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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Sep 22. 2024

선한 영향력을 끼치길

독립운동을 후원하셨던 외증조 할아버지

 외증조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후원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독립유공자이신데 외증조할아버지에 대해 검색을 하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오동균 1896년 9월 13일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1일 김승옥(金升玉)·김창규(金昌奎) 등과 함께 고창읍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그는 김승옥과 함께 독립선언서·국민휘보(國民彙報)·조선독립가(朝鮮獨立歌) 등의 문서를 구입하여 이를 다량으로 등사한 후, 읍내 유지 및 학생들과 연락하여, 고창 장날인 3월 19일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일본 경찰에게 누설되어 예정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하지 못하였지만, 3월 21일 오전 11시 1백여명의 시위군중을 모아놓고 독립만세시위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역설한 후, 이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도중에 일본 경찰의 제지를 받았지만 더욱 기세를 올려 군청으로 행진해 가서, 군수와 군청 직원들에게도 독립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다가,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그후 1919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1928년 4월 28일 임실 청년회관에서 열린 제4차 전라북도 기자단 정기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언론을 통하여 호남지방의 항일사상을 고취시키는 등 계속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8.15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갔고 1950년 10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오동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며칠전 갑자기 브런치 첫 화면 제가 뜬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눈을 의심했고 아직 부족한 것도 많은데 좋게 봐주신 분들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외증조할아버지처럼 큰 일은 아닐지라도 제 삶 속에서 만나는 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또 글과 음악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노력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뉴스를 보면 걱정스러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쟁도 얼른 멈추면 좋겠고 지구가 아픈 거 같습니다.  사건, 사고들이 너무 많은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The Prayer> 곡을 올려봅니다.


https://youtu.be/_5TH4Gi9RPc?si=BZ9nxFfr1zWatY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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