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선 <잠(2022)>
영화 <잠>은 총 3부에 걸쳐서 영화가 진행이 된다. 1부에서는 극심한 수면장애를 겪는 현수를 바라보는 수진의 시점이다. 그녀는 현수와 함께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써보지만 마음처럼 들어먹지 않는다. 수많은 일을 겪고서도 수진은 현수와 함께 있어야지만 이 일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게 된다. 2부는 점점 피로해 가는 수진을 바라보는 현수의 시선을 비춰준다. 조금씩 나아지는 현수와는 다르게 수진의 예민함은 극도로 달하게 된다. 3부에서는 둘의 시선이 하나로 합쳐진다. 상대방을 바라보던 시선은 이제는 하나가 되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결국 둘이 함께 했기에 이 모든 시련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는 현수의 수면장애로 인해 일렬의 사건이 차례차례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독특하게 그 과정 속에는 현수가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장면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현수의 행동을 재단하려 들지도 않는다. 수진은 사람보다 병을 탓해야 한다며, 오히려 그런 현수를 감싼다. 가장 편한 장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언제든지 나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가족이기에 나는 그 사람과 함께해야만 한다.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서 수진의 예민함은 더욱 심해진다. 그녀는 은연중에 현수의 폭력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것이 현수의 본성이라고 믿지 않는다. 스스로는 그런 현수를 알아볼 수 있으며,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린 인간의 경우는 다르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으며 강아지만큼이나 손쉽게 다칠 수 있는 존재이다.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수진은 냄비로 현수의 머리를 내리치고 그를 결박하여 칼을 들이민다. 그에게 귀신이 들린 것이라 믿으며 처음으로 현수를 향해 직접적인 분노를 표출한다.
결국 수진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현수의 수면장애는 완치가 된다. 현수의 완치와는 다르게, 수진의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어쩌면 처음부터 병이라는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수진에게 되려 현수는 왜 그러느냐며 윽박을 지른다. 본인은 다 나았는데 너는 어째서 그 자리에 있느냐며 상대방을 탓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진에게 그는 좋은 사람이기에, 귀신만 없으면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결국 현수에게서 '귀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폭력성이 빠져나간다. 폭력성이 빠져나간 현수가 어떤 모습이라도 수진은 그를 또다시 믿을 것이다.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