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비밀의 언덕(2022)>
영화의 시작부터 명은은 작고 큰 거짓말을 거듭한다. 거짓말이 쌓이고 쌓여 조금씩 커지고 언덕만한 크기가 된다. 언덕에 가려져 앞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명은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명은은 언덕을 쌓는 방법을 배웠지만 그 위에 올라서는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동을 관객층으로 타켓팅한 영화와 아동을 주연으로 쓴 영화는 주제가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는 관객에게 겪어보지 못한 일, 혹은 처음 경험하는 일에 대한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나 후자는 명백하게 다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대다수는 명은이의 나잇대보다는 명은이의 주변의 어른과 비슷한 나잇대가 대다수일 것이다. <비밀의 언덕>의 배경은 1990년대의 후반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은 영화를 바라볼 때 어린 시절의 본인에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어렸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은 아주 잠깐이어야 한다. 우리는 아주 작은 언덕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높은 언덕들을 앞에 두고서, 작은 언덕에 오른 것을 만족해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우리가 올라온 자리에는 조금씩 흙이 쌓인다. 그 흙이 쌓이고 쌓여 새로운 언덕을 만들어낸다. 언덕의 개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더욱 오르기 힘들어질 뿐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언덕 밑으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나, 기꺼이 사다리를 찾아서 놓아줄 수 있는가.
명은이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솔직하게 서술한 원고지를 흙 속에 묻어 숨겨버린다. 그들이 비밀을 숨겨 만들어낸 기반은 어른이 만든 것보다 굳고 단단할 것이다. 우리는 감히 그들이 밟고 서있는 땅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끊임없이 언덕의 크기를 줄여주는 일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