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밀러 <3000년의 기다림(2022)>
지니의 첫 번째 주인이었던 시바는 솔로몬에게 ‘여자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알리세아는 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했지만, 지니는 그녀에게 욕망이 없음을 지적하며 본인의 욕망을 모른다면 그 답 또한 알 수 없다고 답한다. 영화에서 소원은 곧 인물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도 같은데, 현재가 만족스러운 그녀에게는 바라는 것이 없다. 그렇기에 소원 또한 없다. 지니는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역할을 하는 정령이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자신을 통해 소원을 빌 때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지니는 그렇게 누군가의 필요를 기다리며 3000년을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소원이 없다는 알리세아의 말은 절망과도 같다. 즉, 그녀에게는 본인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그는 어떻게든 그녀에게서 숨겨진 갈망을 찾아내고 소원을 빌게 하기 위해 그녀와 대화를 시작한다.
그녀는 지니와 대화를 하는 사이,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빌게 된다. 알리세아는 온전히 지니를 위해 자신의 소원을 모두 사용하였다. 그녀의 소원은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있다. 지금까지 지니가 들어왔던 소원들은 사랑, 힘, 권력, 재능 등 각각의 주인들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그는 일방적으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언가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리세아는 다르다. 알리세아에게 지니는 그 자체로 본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지니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정령이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알리세아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앞서 말했듯이 지니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리세아라면 말이 다르다. 만일 지니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녀가 주는 마음은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지니가 지금껏 주인들에게 보였던 사랑은 (굳이 분류하자면) 아가페적 사랑이다. 그들에게 헌신하고자 하였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였다. 그러나 알리세아와의 관계에서는 에로스적 사랑을 보인다. 자신이 보인 사랑에 응당 당신이라는 대가를 받기를 바란다. 욕망은 두 사람 사이에서 평형을 이룬다.
지니는 알리세아를 따라 그녀가 생활하는 영국으로 오게 되지만, 환경이 맞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낸다. 알리세아는 결국 마지막 소원으로 그에게 자신의 곁을 떠나기를 부탁한다. 주인이 세 가지 소원을 빌면 자유의 몸이 된다는 말처럼, 지니는 결국 알리세아의 덕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자유란, 더 이상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존재한다. 더 이상 소원을 들어주지 못해도 나라는 존재 그대로도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한낱 작은 인간의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