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블린의 딸 조이는 엄마에게는 영 불만족스러운 존재이다. 엄마 눈에는 여느 여자아이들과는 다르게 꾸미지 않은 채 자꾸만 몸에 살은 찌고, 문신을 하고 다니며, 동성인 친구를 사귄다. 어디에 감시 카메라 달아 나를 몰래 보고 영화로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 집과 똑같다. 동양인으로서 부모 속을 썩이는 방법은 어느 집이나 똑같구나 생각했다. 에블린은 조이의 탈선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이건 아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부모님께 처음 타투를 들켰던 날, 부모님은 나를 앉혀 놓고 본인들이 아직 이걸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얘기해주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들이, 부모님에게는 너무나도 어색하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나의 시선을 모르듯이, 나 또한 부모님의 시선을 알지 못한다. 우린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간과한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에블린은 모든 평행우주 속에서 가장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에블린이다. 잘하는 것도 없고, 특출난 것도 없는, 수많은 후회를 지나 탄생한 존재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많고 많은 에블린의 평행우주를 보았다. 남편을 따라가지 않아 배우로, 가수로 성공한 모습, 요리사가 된 모습, 어쩌면 여자를 좋아했을 모습까지도. 그중에서도 에블린이 선택한 건 남편과 딸을 만나 작은 세탁방을 운영하는 아주 작은 우주이다. 에블린은 조이가 이런 자기 모습을 닮지 않기를 바라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딸의 탈선을 바로잡으려 한다. 이런 에블린이 잘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다른 우주의 자신으로 점프하는 일이다. 버스 점프를 통해 에블린은 다른 우주에 있는 본인과 닿을 수 있는데, 수많은 기회를 놓쳐 온 에블린에게는 아주 많은 다중우주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어디에서든 어떤 모습이라도 될 수 있다. 에블린은 버스 점프를 통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뛰어난 지혜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런 걸 보면 모든 엄마들은 버스 점프를 사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일들을 척척 해낼 수가 없다. 가사와 일, 양쪽을 지탱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써의 역할도 해낸다. 내가 모르는 물건의 위치를 모조리 알고 있고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들도 잘만 해낸다. 어린 시절 나에게 엄마는 처음 만나는 영웅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불친절한 영웅.
엄마인 에블린은 조이의 일탈을 잠시의 방황이라고 생각한다. 일탈을 마치면 다시 원래의 예쁜 딸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 행동이 일탈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상상치도 못했던 모습이 원래 조이의 모습이라면 에블린은 조이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조이가 겪는 성장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자각하며 온전하지 못한 자신에 불안감을 느끼지만 이 불안감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 엄마는 나의 불안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가 지금껏 겪어온 우주는 너무나도 넓고 다양해서, 나의 작은 불안은 그 우주 안에서 아주 작은 티끌에 불과할 수 있다. 그리고 조이는 그 사실을 이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사실, 내가 겪을 우주가 조금씩 작아진 것은 전부 엄마의 도움이었을 것이다. 미리 모든 걸 보고 온 당신이, 나에게는 전해주고 싶지 않은 게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당신은 온몸으로 나를 지켜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세상을 다 알지 못해서, 그 사실을 자주 망각하며 살아간다. 그저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엄마가, 내 불안에 공감해주지 않는 엄마가 밉고 야속할 따름이다.
딸과 엄마의 관계는 흔히 애증이라고 한다. 사랑하기에는 너무 멀고, 멀어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걸 엄마가 다 들어줄 수는 없듯이, 엄마도 나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다. 내가 엄마에게 다정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엄마에게는 너무나도 큰 부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이미 안고 있는 우주가 너무나도 커서, 나의 우주까지 안아주기에는 이미 팔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엄마는 엄마다. 그 다재다능한 영웅이, 자신의 힘으로 해내고 있는 일이 ‘나의 엄마’라는 역할이다. 비록 나의 감정을 모두 읽지는 못하지만, 내 서운함을 모두 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이미 당신 나름의 역할은 다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제멋대로인 나를 품어줄 수 있도록, 내 삶에 나타나준 가장 너그러운 사람은 다름 아닌 엄마이다.
우리는 다정해질 수 있다. 다정해 져야 한다. 우린 너무나도 불완전한 존재니까. 서로를 품어줄 누군가가 필요해서, 그걸 위해 내가 엄마와 만난 것이라면 기꺼이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번 더 좋아한다고 얘기할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엄마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다정한 것이라면, 기꺼이 엄마에게 알려줄 것이다. 수많은 우주를 지나서 나를 만나러 온 당신에게, 수많은 나 중에서도 가장 하자가 많은 나를 선택한 당신에게, 내일 하루도 같이 잘 버텨보자고 문득 이야기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