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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따 Jun 11. 2023

당신도 넉넉한 하루이기를.

아침에 출근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

제주에서 지내면서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출근 버스를 늘 같은 시간에 타고 가다 보니 정류장마다 타는 사람들의 얼굴이 익숙하다. 그런데 익숙한 한 분이 버스카드를 안 가져왔는지 버스에 올라타 버스태그 앞에서 가방을 한참 뒤지다가 한 칸 내려가면서 또 가방을 뒤져보고 시간이 좀 걸리니 내리려고 하는 찰나였다.

참고로, 이 출근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넘어가는 사람들인데 배차간격이 한 시간가량이다. 그래서 이 버스를 놓치면 제시간에 출근하는 것은 포기해야 되고 굉장히 속상한 하루가 된다. 

승객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 버스를 놓치면 밀려올 그 감정과 그렇게 시작한 하루가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나는 는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고 앞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이야기하고 도움을 주지? 


...

'괜찮으시면 제가 찍어드릴까요..?' 다행히 내 도움은 감사로 돌아왔다.



#

내가 타는 출근버스는 제주공항으로 가는 버스다. 그리고 사는 곳이 관광지이다 보니 이른 아침에도 공항으로 가는 관광객들이 많이 탄다. 유독 관광객들이 많이 탄다 싶은 날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연휴가 끝나는 날이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는데 경험 상 역대급이었다. 좌석버스라서 통로도 좁은데 커다란 백팩을 멘 사람들부터 커다란 캐리어를 좁은 통로로 끌어가며 타는 사람들까지 있어서(버스의 짐칸도 모두 꽉 찬 상태여서) 모두가 불편한 시간들이었다.

내 자리 옆 통로에 서있는 사람은 체구가 작은 여자분이었는데 커다란 백팩을 매고 숄더백까지 메고 있어서 서있는 게 힘들어 보였다.

어릴 때 버스를 타면 앉아계시는 어르신들은 항상 짐을 자기가 들어주겠다며 달라고 하셨다. 나는 어르신들이 들어주시는 게 불편해서 괜찮다고 거절을 했었는데 두세 번의 실랑이는 꼭 했었던 것 같다. 그랬던 탓에 속으로 고민을 했다. 짐을 들어준다고 할까? 


...

'괜찮으시면 제가 짐 들어드릴까요..?' 이번에도 다행히 내 도움은 감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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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가 그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 내가 도움을 주고도 되려 내가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래서 쉽게 도움을 주는 것도 꺼려지게 되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마음이 넉넉하지가 않은 것 같아 보일 때가 많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넉넉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세상이 각박해졌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결국 우리에게 있고 나에게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명이 발달했다. 우리는 아주 쉽게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볼 수 있게 되었고,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모호하던 내 영역의 경계는 점점 선명해지고 넘어오기 힘든 벽이 쌓였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도움을 주기 전에 '괜찮으시면..'이라고 물어본 것도 나의 영역의 경계가 분명하고 벽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다행히 내 도움이 감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루를 넉넉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도 넉넉하게 시작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또 그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것이고 혹시나 그 공간 안에 넉넉하지 않았던 누군가에게 작지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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