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바른 계절
드러냄이 미덕인 시기
모든 것들이 튀어나와 성장하기에
어느 때보다 예의를 차려야 하는데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의
어려움을 알고 나서야
나는 여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원형이정의 형, 인의예지의 예, 여름)
-2025년 7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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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여름은 여전히 예의가 발랐다. 살아있다는 괴로움을 자아내지 못하는 캘리포니아의 여름은 특유의 쾌적함으로 밖을 나서는 이에게 아무런 비장함도, 집에 들어설 때의 부활감도 주지 못하는 반면, 대구의 여름은 사람으로 치자면 한번 만나면 평생 잊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뜨겁게 반기는 습기에 촉촉이 젖어드는 폐포, 에어컨에 굳게 닫혀 있던 모공도 일제히 결계를 풀어헤친다. 이 틈에 얼씨구나! 심장까지 훅 파고드는 여름. 서로의 심장이 합쳐지고, 이제 여름의 사정은 내 사정이 된다. 아무리 지랄 맞아도 이해할 수 있다.
서로의 사정이 와닿는 관계가 많을수록 삶은 풍요롭다. 꼭 사람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내가 인식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서, 특히 내 사정에 해박할수록. 사정은 ’일 사事‘에 ’뜻 정情‘. 내가 뜻하는 바를 알수록 삶은 단순하고 풍요로워진다.
연희는 자녀를 많이 낳았다. 본인은 키우느라 죽을 뻔했겠지만 나는 너무 좋다. 그중 나는 네 번째 포지션으로, 엄마 같은 언니들이 셋이나 있고 귀여운 동생도 있다. 다섯 자녀 중 넷째라는 자리는 마치 ‘너는 그냥 네 멋대로 살면 될 것 같아'라는 신의 명령 같았고, 나는 평생을 그 명에 충실했다. 자매끼리는 깊은 대화 없이도 서로의 사정이 와닿는다. 이렇듯 연희는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서로를 그리워했던 마음이, 더워 미칠 것 같은 날씨에 녹아 새로운 기억으로 합금되고, 모든 현재적 기쁨이 실시간으로 추억이 된다. 다 같이 우르르 마트에 장만 보러 가도 재밌어 죽는다.
일본에 사는 큰언니가 먹고 싶어 했던 홍합라면 (일본엔 생물 홍합이 별로 없다)과 떡볶이를 다 같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데, 큰언니가 감탄을 연발하며 오물오물 홍합을 씹는 모습에 흐뭇하다.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둘째 언니가 만든 떡볶이에선 좋은 맛이 나서 작은 접시로 네 번이나 먹었다. 언니는 모든 평범한 음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셋째 언니는 요리에 일가견이 없지만 참치마요를 넣은 묵은지말이는 세상 누구보다 맛있게 만들어낸다. 밥 하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깊은 맛을 냈냐 물었더니, 대답은 '릴스'.
귀여운 막내가 낳은 더 귀여운 아들, 떡잎부터 어딘가 쇼헤이 오타니가 연상되는 내 신상 조카는 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 핸드폰에 수천 장, 마음속에 수만 장 담아왔다. 살면서 현실의 화면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꺼내봐야지.
하루에 열흘을 사는 것 같았던 3주 간의 밀도 높은 행복을 무마하느라 나흘 밤낮을 쓰러져 잤다. 이제 정신 차리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음 통역 준비를 해야 한다. 국가무형문화재 나전장들이 LA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