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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Jun 18. 2024

사모곡,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인사 2, 둘째 언니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요

오전 5:49

2024-06-17


엄마, 오늘 둘째 언니가 미국 자기 집으로 돌아가요.


언니는 내가 5월 31일부터 엄마와 2주일 동안 시간을 보내자고 해서 5월 31일 아침 LA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엄마의 부고를 듣고 17시간 동안 울먹이면서 엄마 장례식에 참석했어요. 언니는 얌전하던 평소 모습과는 달리 얼마나 구슬프게 크게 울던지. 전 그렇게 못 울어서 부끄러웠어요. 언니의 울음소리는 깊은 엄마에 대한 사랑과 후회가 배어 나와 50평의 넓은 장례식을 침묵으로 흐느끼게 했습니다. 40년 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나서 20년 전 다시 미국으로 다시 삼민을 간 언니는 자주 엄마를 보지 못해서 더 애달프고 죄송했을 거예요. 엄마는 세 딸 중 작은 언니를 제일 좋아했지요? ‘순옥’이란 이름처럼 순하고 고분고분했으니까요. 아버지도 순옥 언니가 중학교 다닐 때 “순옥이가 아들이었으면……”이라고 하셨다지요. 하루만 더 참았으면 엄마는 엄마의 마음속 기둥이었던 언니를 보고 떠나셨을 텐데. 생각하면 모든 것은 때가 있고, 늙은 부모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아요.

    

엄마, 저도 작은언니가 참 좋아요. 제 인생에 언니가 없었다면 얼마나 사막 같은 삶이었을까요? 언니가 있어서 소소한 인생의 고민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고,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애를 썼어요. 또 언니가 형부 알게 모르게 돈을 보내줘서 엄마에게 필요한 에어컨, 틀리, 파출부비, 계절마다 새 옷을 사드릴 수 있었어요. 제가 엄마 만나러 간다고 하면 엄마 좋아하는 회를 사드리라고 몇십만 원을 보내줘서 박봉에도 돈 걱정 없이 효녀 흉내를 내곤 했어요. 엄마, 감사해요. 작은 언니처럼 좋은 사람을 낳아줘서, 저와 언니 동생으로 만나게 해 줘서. 지금처럼 매년 우리 집과 미국언니집을 오가면서 자매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인 언니를 제게 선물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단돈 10원도 유산으로 받은 것은 없어도 네 명의 언니오빠를 제게 만들어 주신 것이 엄마의 위대한 유산임을 이제야 깨달아요.    

  

엄마, 제 아들 딸도 서로서로에게 선물 같은 존재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아마 그렇겠죠? 제가 이렇게 이모, 외삼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평생 보여줬으니까요. 우리 오 남매가 낳은 아이들 10명이 서로를 위해 주는 가족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 까요? 삭막한 세상에서 그래도 10명 만은 서로의 핏줄에는 엄마의 DNA를 공유하고 있으니 서로를 잘 이해하고 아껴주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엄마, 지난달 언니가 한국에 와서 4월 17일에 와서 5월 14일까지 국내에 머무를 때 엄마를 모시고 횟집에 가서 회를 사드렸잖아요. 그때 엄마는 회를 그렇게 잘 드셨는데 어떻게 보름 만에 돌아가실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는 안 가요. 엄마가 너무 식사를 잘하셔서 우리는 몇 년은 더 사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이별이라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여전히 살아계신 것 같아요.      


엄마, 엄마가 친애했던 작은 딸 오늘 미국 자기 집으로 돌아가요.


우리 자매는 엄마 덕분에 또다시 17일 동안 함께 지냈어요. 우리 집에서요. 남편은 불편했겠지만 어쩌겠어요. 우린 엄마가 사시던 대전 근처에서 10일을 머물었어요. 그 시간 동안  엄마 친구들을 만나 인사드리고, 자주 못 만난 가족들을 만나서 어릴 때 추억을 나눴어요. 엄마와 함께 살겠다던 명성식당 사장님은 엄마의 소식을 전하는 우리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어요. 엄마 친구들을 명성식당에 모시고 밥을 대접하고 싶었는데 거기까진 못했어요. 사장님께 부탁드렸어요.


엄마 일을 조금 마무리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7일 동안 언니는 저의 집에서 지냈어요.  언니는 이 시간에  필요한 것들을 또 많이 샀어요. 언니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나물을 좋아해서 한국에 오면 주로 나물을 마구마구 사서 가요. 언니는 엄마처럼 육류는 싫어하고 야채와 과일은 엄청 좋아해요. 이것도 엄마의 작은 유산이죠.


큰언니는 김치 4종세트(배추김치, 오이소박이, 파김치, 깻잎김치)를 해서 우리 집으로 보내왔어요. 언니가 머무는 동안 먹으라고요. 파김치 맛있다고 했더니 미국에 가져가라고 10킬로를 담아서 또 보내왔어요. 하여튼 손이 커요. 못 말리죠. 큰언니의 손 크게 베푸는 것도 엄마의 유산이에요. 우리 오 형제의 행동 어디에서든 엄마가 숨어있어요.


저는 엄마 닮아서 잠이 수시로 와요. 피곤하면 엄청 잘 자요. 그래서 엄마처럼 장수할지도 몰라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작은언니는 잠이 없고 엄청 부지런해요. 언니는 할머니를 닮았나 봐요. 바지런했던 할머니 말이에요. 할머니도 아흔 넘게 장수하셨으니 울 언니도 장수할 거예요. 부지런한 사람도 게으른 사람도 다 장수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새벽 6시부터 언니와 엄마의 막내사위인 남편이 짐을 싸고 있는데 2주 전에 25킬로 대형 가방 3개에 가득 짐을 가져간 언니의 짐이 세 박스가 넘어요. 이번에는 육촌언니와 내 친구 하은엄마가 보내준 떡이 한 박스가 넘고, 큰 언니 김치들, 우리 집 냉장고에 있던 다양한 냉동 나물에다가 손주 옷들까지 이미 짐이 혼자서 가는 사람치곤 많아도 너무 많아요. 저렇게 많은 짐을 갖고 다니는 건 엄마를 안 닮았어요. 저도 저런 걸 귀찮아해요. 엄마와 나는 그런 점에서는 닮았죠. 언니는 부지런한 쪽, 나와 엄마는 게으른 쪽.  


엄마가 살아계실 때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엄청 싫었는데, 이제 엄마가 떠나시니 닮았던 점을 찾고 있네요. 5월 31일 이후 전 엄마와 닮았다는 소리가 좋아지는 중이에요.   

 

엄마, 우리 안에 엄마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려고 애써보지만, 자꾸 엄마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가슴이 아려요.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최소한 2주일에 한 번은 엄마를 뵈러 갔어야 했는데, 이 게으른 딸은 미루고 미뤘어요. 일 년에 서너 번만 뵈러 가서 너무 죄송해요. 방학마다 저희 집에 오시게 해서 일주일씩 효도를 몰아서 하던 것도 후회가 돼요.


엄마의 마지막 1년을 너무 외롭게 소홀이 한 불효를 생각하니 제 눈이 시려요. 가슴에서도 슬픔과 후회가 배어 나와 답답하고 눈은 더 흐려지네요. 엄마 죄송했어요. 정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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