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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은 선물 Jan 03. 2023

내게 쓰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아!

엄마인 나에게 전하는 편지


“저는 저에게 쓰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워요. 염색하고 파마하고, 피부과에 가서 피부 관리받고,두어 달에 한 번씩 옷 사 입을 때, 친구들과 놀러 가서 돈 쓸 때, 돈이 하나도 안 아까워요.그런데 아들 학원비 낼 때 너무 아까워요. 스스로 공부 안하는 아들 수학 강사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내는 수십만 원의 학원비는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어요.”
라고 엊그제 우진 엄마가 한 말은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진 엄마(가명)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은 그녀의 말도 삶의 방식도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올해 나는 자율휴직을 신청했다. 자율휴직은 몇 년 전 도입되었는데, 교사들이 교직 생활 중 딱 1년 쉴 수 있는 휴직제도이다. 6개월 단위로 신청할도 수 있고, 연장도 가능하지만 나는 딱 6개월만 신청했다. 1년 쉬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은행 담보대출 받아 산 집의 이자도 걱정되고 아직 취업 준비 중인 아들 생각도 나고 남편 눈치도 보였기 때문이다.   

  

소식을 들은 언니는 화를 많이 냈다. 내가 휴직하면 같이 여행을 다니려고 여기저기 찾아보던 차에 나의 6개월 휴직 소식을 들은 언니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을 얼굴에 맞은 것처럼 짜증을 냈다.

“30년 동안 일했으면 1년은 쉬어야지. 무슨 소리야? 마이너스 통장 있다면서 그것 쓰면 되지. 그렇게 돈이 좋으면 휴직하지 마. 차라리.”


사실 언니의 이 말만 듣고 언니를 생각 없이 말하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울 언니는 막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며 삶을 즐길 수 있길 바라는, 여고 시절부터 나의 어린 엄마였던 언니이기 때문이다.


10살 많은 언니는 내가 아기일 때부터 엄마처럼 씻기고 옷도 레이스로 떠서 입히면서 키웠다.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내가 중3 때 결혼한 언니에게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쉰을 넘은 오늘까지도 나는 언니에게만큼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한다. 내게 언니는 엄마이자 친구이자 존경하는 멘토다. 그런 언니는 1년 휴직을 한다고 믿고 함께 여행 갈 생각으로 2022년 내내 꿈에 부풀어 있었다. 처음부터 6개월만 휴직할 거라고 했으면 화가 덜 났을지도 모른다. 언니의 말은 나와 놀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다. 


내 주머니 사정을 말하고 이것저것 이유를 만들어 댔더니, 며칠 후 언니는 나의 휴직 6개월을 수용했다. 대신 6개월 내내 언니와 같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나는 우진 엄마와는 다르게 딸이나 아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1년 동안 모은 거금 3천만 원을 딸의 프랑스로 1년 어학연수비로 송금할 때도, 그다음 해 영화학과 졸업하는 아들의 영화 작품 제작비로 2천여만 원을 지원할 때도, 두 아이가 어릴 때부터 냈던 그 많은 학원비도 계산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휴직할 날이 다가오자 내가 휴직 동안에 벌지 못하는 돈과 쓸 돈을 요리조리 자꾸만 계산하고 있으니 내가 나를 봐도 한심하다.


 “선생님! 쌤이 쓰는 돈 만이 쌤 거에요!” 1101동 1004호(가동 가호)에서 나를 혼내는 우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니지. 나를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워하면 안 되지!’     

내가 늙고 힘이 없어져서 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내 희생에 대한 보상을 바란다면 아이들은 나에게 말할지도 모른다. 

“엄마, 언제 우리가 언제 아껴서 우리 달라고 했나요? 엄마 스스로 한 거잖아요”라고. 내 아이 둘을 불효자로 만들 순 없다.     


나는 이런저런 고민 끝에 6개월만 자율휴직을 신청했다. 대신 6개월 동안 ‘나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딸과 프랑스 파리 여행을 시작으로 ‘오로라 보기, 스위스 알프스 산책하기, 봄 진달래꽃 만끽하기, 제주도에서 1주일 여행하기 등’을 하면서 나에게 여행을 선물할 작정이다. 오매불망 나의 휴직을 기다리는 언니와 동행하며.      


2023년 1월 1일 새해 아침이다. 결심해 본다…. 아들, 딸만 생각하는 자식 바라기는 인제 그만. 

“2023년부터는 엄마인 나에게 쓰는 돈 아까워하지 않기”    

 

남편이 옆에서 ‘새로 시작한 배드민턴용 신발을 사야 하는데 15만 원은 비싸지?’라고 묻는다. “무슨 소리야, 딸 운동화 20만 원짜리 사주고. 자기 것도 비싼 것 사!” 


“니 통장에 2천만원 있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모르지만, 내가 털있는 옷이 있다는 건 우리 동네 슈퍼 아줌마도 안다.”고 나보고 밍크 옷 사입으라던 대학 선배의 호탕한 비유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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