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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도 Sep 03. 2022

'너를 위해서'라는 거짓말

친애하는 내 감정의 파도에게|Ep.2

성실의 덫


나는 성실한 학생이다. 과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그랬고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사전적 의미에 걸맞게 나는 매사에 정성을 들였고 거짓이 아닌 참을 추구했다. 성실하게 사는 삶은 모두에게 귀감이 되었다. 학교에서 '표창장'이라는 금박이 박힌 종이를 주며 박수를 받을 때마다, 그 종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칭찬을 받을 때마다,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매사에 성실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늘 실수와 실패를 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성실하지 못한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당연한 것들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성실하지 못한 나'는 '노력하지 않은 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 생각은 곧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변화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실한 나로 남기 위해서는 하루도 쉬면 안 되는데, 성실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가야 하는데, 그래야만 모두가 나의 '쓸모'를 인정해줄 텐데. 성실이라는 이름의 덫은 진화를 추구하는 나를 계속해서 붙잡았고, 나는 그 덫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친구들을 비롯한 타인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했고, 결국 나는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너를 위해서'라는 거짓말


왜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할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나오는 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이 모든 성실은 나를 위해서니까요. 그렇다면 이 모든 성실이 나를 지켜내는 것에 성공했는가. 그 질문에는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답을 내어놓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왜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은 내가 만든 답이 아닌 타인이 만들어 준, 그럴듯하게 포장한, 예쁜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능력이 없어도 '성실함'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네가 뒤쳐지더라도 사람들은 너의 '성실함'을 기억할 것이다. 네가 지금 뒤처지는 것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력은 곧 성실이며, 성실은 곧 너를 나타낸다. 그러니 너는 멈추어서는 안 된다.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온 말이었다. '너의 과거는 기록되는 순간부터 영영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말에 한 치의 오차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완벽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갈고닦아 온 하얀 도화지는 보지도 못한 채, 실수로 떨어뜨린 검은 얼룩점 하나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네가 유난이다. 어른답게 행동하지 못한다. 이 모든 말들은 너를 위한 것들이다. 그러니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회에 나가서 도태될 것이다. 지금까지 들어온 '너를 위해서'라는 아름다운 거짓말 때문에, 나는 성실이라는 이름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고 빠져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리오네트의 삶


정리해보자면 나는 '아름다운 마리오네트'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누군가 조종하면 조종하는 대로, 누군가 밀면 밀려나고, 누군가 끌면 끌려다니는 인형의 삶을 살았다. 대개 아름다운 인형은 자아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아름다운' 혹은 그 아름다움을 변치 않게 지킬 수 있는 '성실'만 있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인형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감정과 자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목표가 '남들에게 아름답고 완벽하게 보이는 것'이었다면, 지금부터의 나의 목표는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온몸을 감고 있던 끈을 끊고 나오는 과정은 쉽지 않다. 나는 물렁한 사람이어서 쉽게 베이고 잘리고 끊어진다. 하지만 이제 내 곁에는 그것을 어떻게 이어 붙이는지 알려줄 사람들이 생겼다. 한낱 인형에 불과했던 내가 사람이 되는 과정은 얼마나 영화 같을까. 나는 그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 속의 행복한 주인공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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