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내 감정의 파도에게|Ep.5
완벽하지 못한 완벽주의자
최근 심리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본인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정말 좋지 않다'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 병원에 간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증상들을 인터넷으로 먼저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이인증'이라는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내가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인데,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제삼자'이기 때문에 본래 '나 자신'에게 어떤 해를 입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선으로 내가 최근 들어 충동적인 행동을 많이 저지르는 것을 보곤 했다. 과소비를 하거나, 처방받은 약을 과다 복용하거나, 생각해보고 해야 하는 일을 앞뒤 돌아보지 않고 저지른다거나. 나는 이 행동들이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제지를 당하니 더 폭주했다. 이런 증상들은 갑자기 왜 나타난 걸까, 를 생각하기 위해 하나씩 되짚어보다 보니 답이 나왔다.
나는 7월 한 달 동안 대학 대표 학생 11명 중 한 명으로 영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나는 이것이 나에게 아주 큰 도전이자, 동시에 큰 고비라는 사실을 알았다. 영국에 간다면 내가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타인'과의 문제였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력해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달 동안 타인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사람이 함께 해야만 보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영국이라는 먼 타지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이미 경험하고 실천하고 돌아왔으므로,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8월부터는 내가 완벽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지점이 내가 망가지기 시작한 포인트였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다만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나는 수많은 완벽주의자 중 한 명이다. 나에 대한 통제를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만, 타고난 기질 자체만 두고 보았을 때 충동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늘 마음속에서 두 자아가 충돌하고 있다. 8월 이후로는 완벽해질 수 있었다고 믿은 내가 점점 7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영국에서 보고 배웠던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느낌이었다. 실수를 하나 씩 저지를 때마다 완벽하지 못한 나를 탓하고 미워했다. 그것은 영국에 가기 전 내가 나에게 느끼던 미움의 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렇게 나는 순식간에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의 해일에 휘말렸고, 영영 떠오르지 못할 사람이 되어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완벽이라는 강박
모든 일들은 처음에 가장 잘 풀린다. 모든 계획대로 이루어질 것 같고, 이대로만 한다면 결국 내가 얻고자 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사람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실수를 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거꾸로 생각한다면 사람은 실수를 해야만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틈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여유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결함이라고 부른다. 같은 틈이더라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처음 내가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을 때 나의 다짐은 '나의 틈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틈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돌아보며 틈을 기록하다 보면 그 틈이 모여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구멍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분명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하루에 한 편씩 브런치를 쓰자'라는 약속을 단 한 번 어겼다는 이유로 브런치에 글을 적을 수 없었다. 정갈하게 맞추어지지 못할 날짜가 두려웠다. 결국 나는 완벽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브런치를 다시 켰다. 이런 순간마저도 나의 틈이고 기록이 필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대로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넘어졌다고 해서 넘어진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까졌을지도 모를 무릎의 상처를 톡톡 털고 다시 일어나 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여전히 가슴은 모른다. 원래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심리적으로) 가장 멀다고 했다. 물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 함께 일하는 것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이런 하루하루는 나에게, 그리고 나를 비롯한 여러분에게 당연한 것이다. 함께 상처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내 글이 여러분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