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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창 May 11. 2023

방과 후 티 타임 #3

라면과 티백의 공통점


 당신은 앞선 글들을 읽고 뭔가에 홀린 듯이 홍차를 주문합니다.(그렇다고 칩시다.) 참을성이 조금 부족하다면 집 앞 마트로 달려가서 기어이 티백 한팩을 손에 넣게 됩니다. 물론 운이 좋다면 말이죠.
(그리고 새삼 놀라게 됩니다. 20개 들이 티백 한 팩이 커피 한 잔 가격 밖에 안되다니…)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닙니다. 이제 당신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잘 마실 수 있단 말인지 일생의 숙제라고 여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중 한 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요리는커녕 라면 한 그릇도 못 끓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들은 생각보다 소수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컵라면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렇습니다. 티백 우리기는 여러모로 컵라면 먹는 법과 비슷합니다.

 비닐포장을 벗기고 티백 하나를 상자에서 꺼냅니다. 당연히 그전에 물을 끓이기 시작합니다. 물은 어떤 것도 상관없지만, 깨끗한 물이 필요합니다. 생수도 좋고 아버지가 약수터에서 가져온 물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수기 물이나 수돗물로 차를 우리기도 합니다.

이제 물을 주전자나 전기물끓이기에 넣습니다.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냐고요?

아 차차茶…

티백 상자를 확인합시다.

가끔 자동차 엔진오일 교환 등의 점검차 정비소에 들르면 출시된 지 한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차들이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사장님! 사이드미러가 접히지 않아요.”
“선생님, 옵션 빼셨네요. 수동으로 하셔야 합니다.”   
제가 실제로 봤던 일입니다.

“사장님! 주차(사이드) 브레이크를 못 찾겠어요!”
“선생님, 이차에는 손으로 당기는 핸드 브레이크가 아니라 발로 밟는  브레이크가 달려있습니다. 신차라서요…”
이건 십여 년 전 제가 겪은 일입니다.

자동차를 사면 설명서라는 게 들어있답니다. 네, 실제로 그렇더군요. 컵라면을 사면 조리방법이라는 것이 한편에 적혀 있습니다. 비빔면은 물을 버리고 수프는 후첨, 그냥 라면이라도 유성수프는 마지막에 넣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차(티백)를 우려내는 방법은 자동차나 컵라면에 비한다면 아주 쉽습니다.


정말입니다.


친절하게도 티백에 음용방법이 쓰여있는 제품도 있습니다.

우리 어디까지 했었지요? 아! 주전자에 물을 따르던 중이었군요.  설명서를 보니 한 잔의 차를 위해서는 200ml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자 이제 여러분의 훌륭한 감과 도구의 도움을 받아서 물 200ml를 주전자에 넣습니다. 끓는 동안 약간 증발할지도 모르고 따로 필요하기 때문에 저는  50ml 더 넣도록 하겠습니다.  가스불을 켜고, 혹은 스위치를 올리고 기다립니다.

다시 설명서를 보니 시간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180초를 정확히 셀 수 있다는 것을 믿지만 제조사는 믿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계를 준비합니다. 손목시계도 좋고 스포츠용 스톱워치도 좋겠지만, 일단 휴대전화 시계를 보는 편이 빠르고 정확할 것 같네요.

250ml의 물은 생각보다 빨리 끓어오릅니다. 비등점을 넘어선 물이 거친 김을 뿜어 올리는 것을 최소 30초 정도 지켜보고 불을 끕니다. 전기라면 자동으로 스위치가 차단되니 걱정 마세요.


이제 여러분은 100°C의 물 230ml(대략)를 얻었습니다.

 종이컵이 있지만 쓰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사랑하니까요. 집이라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머그컵이나 신혼 때 이후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특별한 컵을 꺼내고, 회사라면 야유회창립기념일에 나눠준 텀블러를 꺼냅니다. 그리고 30ml의 펄펄 끓는 물을 먼저 넣어줍니다. 예열을 하기 위함입니다. 세척도 되고 소독도 조금 될 테니 아까워하지 말고 10초 정도 휘휘 돌리다가 버려주세요. 그러고 나서 200ml의 물을 잔에 넣어줍니다.

잠깐! 물 먼저 넣습니다. 티백이 먼저가 아니라 물이 먼저 들어있는 편이 좋습니다. 이건 롱 블랙과 아메리카노의 차이 같은 뭐 그런 게 아닙니다. 조금 더 섬세한 부분인데요. 일단 제 말을 믿어보세요.

자 이제 뜨거운 물이 담긴 잔 속에 티백을 살포시 넣습니다. 그리고 제조사에서 권장한 시간만큼만 우려 줍니다.

제가 빵 만들기를 하던 초반에 일입니다. 이제는 제법 빵 다운 빵을 만들 수 있게 됐는데, 같은 재료로도 초반에는 떡도 밥도 아닌 익은 반죽을 만들기 일쑤였습니다. 발효 시간과 온도를 못 맞춰서였는데요. 빵은 한두 시간 기다려야 발효가 되지만, 홍차라면 3-4분 정도면 되니까 빵 만들기보다는 실패확률이 적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발 3-4분 기다려 주세요. 흔들거나 넣었다 빼기는 하지 말고, 고요히 찻잔 위에 떠오르는 증기를 바라보거나 시계가 잘 가는지 지켜봐 주세요. 타이머 기능을 설정하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낮잠을 자는 편도 좋겠습니다. (1분만 편안하게 잘 수 있다면…)

타이머가 울렸다면 티백을 살포시 빼서 버려줍니다. 해체해서 텃밭이나 화분에 주는 편도 좋고, 말려서 냉장고 탈취제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자! 차가 완성됐습니다.

어때요? 네? 맛이 없다고요?

아 차차茶... 홍차가 조금 그래요. 이게 원래는 그냥 마시는 차였는데… 자 이제부터 조금 어려워 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컵라면의 세계에 비한다면 정말 쉬우니 천천히 따라오세요.

- 맛있는 홍차를 마시는 방법은 다음 편에 계—-속—-


*홍차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비교적 고온으로 3분 정도 우려냅니다. 하지만 녹차를 그렇게 우려내면 쓰고 떫어서 맛이 없습니다.(여러분의 녹차가 맛없는 이유...)물론 쓴 성분 속에는 좋은 것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약이 아닌 차를 마시는 거니까 맛있게 우려 봅시다. 녹차는 80°C -70°C의 물로 우려내는 게 좋습니다. 역시나 티백 박스를 보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50°C의 물로 1분 만에 라면을 끓여낼 수 없듯 차도 그렇습니다. 설명서 확인을 생활화 합시다.

온도계가 달린 텀블러가 있더라구요. 마침 녹차에 딱 좋은 온도 입니다.
차는 물이 중요한데... 물을 그린 그림이 이런 것 밖에 없네요. 로마에는 참 분수가 많다고 합니다.

그림은 인별그램에 있습니다.

https://instagram.com/jangchang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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