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점심식사로 치즈라면을 먹었습니다. 냉장고에 달걀은 없고 슬라이스치즈만 덩그러니 있길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짜장라면에는 가끔 치즈를 넣어서먹었었지만 국물라면에 치즈를 넣은 것은 21세기 들어서는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딱히 치즈라면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러 만들어 먹을 만큼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라면에는 역시 달걀이죠. 그런데 사반세기 만에 먹어본 치즈라면도 제법 맛있더군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에포만감도 적당해서꽤나 만족스러운한 끼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라면을 조리하시나요? 아마도 세상에는 수만 가지 라면조리법이 존재하지 않을까요? 냄비만 해도 양은냄비나 뚝배기, 프라이팬이나 반합을 사용해서 맛과 멋의 변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물도지장수부터 수돗물까지 여러 가지가 있겠네요. 끓이는 시간도 제각각 면과 수프가 들어가는 순서도 다르겠고, 끓인 후 냄비째 먹거나 양푼이나 놋그릇에 담아 먹을 수도 있을 겁니다.파 만두 떡 달걀 치즈 햄 어묵 오징어 전복 ++살치살 등등등 들어가는 부재료도 수없이 다양할 테니 거의 무한대의 라면 끓이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물론 누가 끓여주는 라면이 제일 맛있지만요. 특히나 한 입만 달라고 해서 먹을 때가 말이죠.
녹차를 우리는 방법은 라면에 비한다면 아주 단순합니다. 녹차를 우릴 때는 달걀이나 대파가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흔히 티브이드라마나 잡지 등에서 접하는 녹차의 이미지는 고즈넉한 산사에 앉아 통나무 탁자에 놓인 분청사기 주전자를 경건하고 절도 있는 동작과 엄.근.진. 표정으로 들었다 놨다 하는 모습입니다만... 그래봤자 차도 음료일 뿐입니다. 다도의 지향점은 단순히 맛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수행입니다. 수행의 수단으로써 차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냥 차 한잔 마시고 싶다면 굳이 다도를 흉내 낼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티백으로 간편하게 우려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녹차처럼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갖고 있는 차는 온전한 찻잎 그대로 우려내는 편이 좋습니다. 티백에는 비교적 부서진 찻잎의 비중이 큽니다. 물론 잘 우러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바쁜 현대인에게는 티백이 좋겠지요. 직장에서 마실 용도로는 딱 좋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맛있는 간식과 함께 녹차를 즐기시려거든 조금만 더 공을 들여서 우려내봅시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거창한 도구는 차차 구비하도록 하고 간단한 도구 몇 가지로 녹차를 우려내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라면을 끓이는 방법 정도는 아니지만 차를 우려내는 방법도 꽤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제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 중 기본이 되는 몇 가지 방식을 혼용해서 간편하게 만든 것입니다. 가정에서 쉽고 간편하게 따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녹차가 필요합니다. 고급스러운 양철통 안에 들어있는 제품도 있고 간편한 지퍼락으로 포장된 제품도 있습니다. 종류가 너무 많다고요? 배송비가 저렴하고 상품평이 많은 제품 중에서 뽑기 하듯 골라봅시다. 어차피 한 두 종류의 차를 마셔봐서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차가 여러분들 입맛에 맞으리란 보장도 없고요. 그래도 추천한다면 작설차*를 추천하도록 하겠습니다. 비교적 고급이지만 가격대가 지나치게 비싸지도 않으면서 맛이 순하고 좋습니다. 아이들이 마시기에도 적당합니다.
*작설차 雀舌茶
참새의 혓바닥처럼 아직 작고 뾰족한 새순을 채집하여 만든 녹차로 곡우 전후로 채엽합니다. 50g 기준 1만 원 선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이 조합이면 모든 차를 우려낼수 있습니다. 믿어보세요.
자. 녹차가 준비됐으면 물과 머그컵 두 개를 준비합니다. 하나만 있어도 차를 우릴 수 있지만 두 개가 있다면 더욱 맛있게 우려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티백 역할을 해줄 거름망이 필요합니다. 요리할 때 사용하던 거름망도 좋고(물론 잘 세척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보리차를 끓이는 주전자 속 거름망도 좋습니다. 저는 다0소에서 파는 주전자용 거름망을 애용합니다. 컵에 바로 얹어서 쓰기도 좋고 구멍도 미세해서 차 찌꺼기가 잔속에 돌아다니지도 않아 좋습니다.
매우 저렴하고 매우 실용적인 거름망.
물은 뭐든 깨끗한 물이 좋습니다만, 가급적이면 정수된 물을 쓰도록 합니다. 고급 생수나 약수터에서 길어온 물도 좋지만 미네랄 성분이 차의 맛을 가두거나 가릴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정수된 물이 좋습니다. 물 온도는 80도로 설정합니다. 온도설정을 기계에 맡길 수 없다면 다 끓인 물에 상온의 물을 더해 온도를 맞춥니다. 물의 양은 한잔이라면 200ml 두 잔은 ×2입니다. 물이 끓으면 머그컵을 가볍게 예열해 줍니다. 그리고 예열된 머그컵에 물을 붓고 차를 넣습니다. (가급적이면 차를 나중에 넣어주세요.) 차는 2g 정도가 적당합니다. 계량을 도와줄 저울이 없다면 베00라00 플라스틱 숟가락이나 요0레 숟가락으로 한 스푼 반을 넣어줍니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봅니다. 차가 천천히 물을 받아들이면서 몸을 풀고 투명했던 물을 녹황색으로 물들이는 변화를 1분 동안 그저 가만히 바라보세요. 손은 머그컵 근처로 얼씬도 못하게끔 팔짱을 낍니다.
촬영을 위해 들이부은 마지막 용정차...
자! 녹차가 다 우러났습니다. 이제 잘 우러난 녹차를 제2 머그컵으로 옮겨줍니다. (거름망이 컵에 들어가는 형태라면 천천히 빼내고 잔 위에 얹는 형태라면 제2 머그컵 위에 올립니다.) 이때 가급적이면 높은 곳에서 녹차를 떨어뜨려줍니다. 이 과정을 통해 녹차 속에 다량의 산소가 들어가고 맛과 향 분자를 깨워줍니다. 온도까지 떨어뜨리기 때문에 마시기 딱 좋은 상태가 됩니다.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머그컵을 들고 향부터 천천히 음미한 후, 가볍게 입술에 찻잔을 가져다 대고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셔봅니다.
어때요? 감사인사는 나중에 개인적으로 하셔도 됩니다.
집에서 혼자 차를 마실때 주로 사용하는 구성 입니다.
지금 녹차를 우려낸 방법은 장인이 빚어낸 녹차전용 도자기로 차를 우려낸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리는 완전히 같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물론 더 좋은 다구로 차를 우려내면 맛이 조금 더 좋아집니다. 그렇다고 티백을 마시다가 잎차로 바꿨을 때 느낄 수 있는 드라마틱한 변화 정도는 아닙니다. 소개한 방법을 조금씩 변형시켜서 거의 모든 종류의 차를 우려낼 수도 있습니다.
어때요? 녹차 생각보다 만만하죠?
네?
그래도 차는 장비빨 아니냐고요?
간G가 안 난다고요?
아차차차...
그럼 다음 편에서 차를 우려내는 몇몇 가지 도구와 방법에 대해 더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제 추천은 머그컵 두 개와 거름망입니다. 한 가지 업그레이드를 한다면 머그컵 지름과 같은 뚜껑 정도지요.
그럼 맛있는 녹차 한 잔씩 즐기시고 다음 편에서 조금 더 있어 보이는 다기들과 함께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