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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란 Nov 21. 2023

잘못 건 전화

엄마라는 쉼터

 아들들은 매일 오후 학원에 도착하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행선지를 알린다. 덕분에 나는 일하다가 전화를 받을 일이 없이 마음 편히 오후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실 남편은 내가 무르고 아이들에게 허용적이라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먹게 해주고, 쉬고 싶다고 칭얼대면 쉬게 해주는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 그래서 어쩌면 귀찮기도 할 아이들의 오후 연락 당번을 자처하는 것이다. 아빠와 아들들의 통화는 무미건조하다. 용건만 간단히, 때로는 바쁜 아빠가 받지 않거나 아들들이 잊고 전화하지 않거나 한다. 그렇게 알림 기능만 가진 통화를 매일 나눈다. 솔직히 나는 아빠의 무뚝뚝함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서서 모든 육아를 한다 하는 열성남편이니 그냥 한 풀 꺾여 준다. 아들들과의 통화 없는 오후는 편하긴 해도 좀 서운하다.


 첫째는 피아노 학원에서 개인 연습실에 들어가선 동생도 모르게 종종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 때의 첫째 목소리는 늘 풀이 죽어 있다. 배가 고프고 힘이 드는 오후에 엄마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엄마라면 나를 이해해 주겠지, 엄마라면 조금 해결해 주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칭얼거리고 싶어 전화하는 것이다. 아빠는 근무중인 엄마에게 자꾸 전화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나는 첫째의 이런 전화가 반갑다. 


 어제도 오후 4시쯤 첫째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몇번 울리기도 전에 내가 전화를 받자 아이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아~ 잘못 걸었어."

 잘못 걸었다고 핑계를 대는 첫째의 목소리에서 아이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어떻게 아냐 물으면 그냥 안다고 답하련다. 그냥 나는 느껴진다. 목소리 톤에서, 호흡에서 아들의 표정을 그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라도 아들 목소리를 듣는 게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랬어? 아고~ 근데 이렇게라도 목소리 들으니깐 엄마가 기분 좋네."

 "응, 끊어."

 내 반가운 마음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끊자고 하는 아들이었지만 끊자는 마지막 한마디에서 아들의 마음이 한결 위로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말투에서 호흡에서 전해지는 아들의 표정과 마음. 전화를 반가워하는 엄마의 마음이 녀석의 고단함에 위로가 된 것이 또 나는 기쁘다. 이렇게 우리는 짧은 대화에서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받았다.


 아이들이 커도 나를 쉼터로 여겨주면 좋겠다.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서 살다가도 엄마에게 돌아오면 마음이 채워지고 용기를 얻고 쉴 수 있다고 여겨준다면 나는 행복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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