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청소년 진로와 저널테라피
청소년은 부모에게 의존적인 아동에서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도기에 있다. 청소년이 성인기로 들어서는 데 필요한 경제적 독립은 직업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 청소년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진로 결정이다. 청소년들은 후회하지 않을 올바른 진로 선택을 하기 위해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진로란 무엇인가? 진로를 의미하는 영어 ‘커리어(Career)’는 라틴어 ‘카로스(Carrus)’에서 유래하였다. ‘카로스(Carrus)’는 ‘수레가 다니는 길을 따라간다(to roll along on Wheels)’라는 뜻을 지닌다. 진로(進路)의 한자를 풀이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길 즉 삶의 방향을 뜻한다. 진로(Career)는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방향성’과 일정한 과정을 거친다는 뜻의 ‘경로’가 함축된 용어이다. 진로란 한 사람이 일생동안 일과 관련해서 경험하고 거쳐 가는 경험의 총체를 이른다. 최근에는 이 진로의 의미가 직업이나 경력을 넘어 생애발달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은 변화무쌍한 직업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들의 진로는 선이 그어진 트랙 안을 달리는 육상경기가 아니라 바람에 따라 유연성 있게 배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항해에 비유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자아정체성을 찾아 걸어가는 길에서 진로의 문을 만난다. 청소년들이 고민하는 자아정체성은 진로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비카스Savickas에 의하면 개인의 정체성은 평생을 통해 구성되어 간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적응하고 변화하는 생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 과정의 출발이 되는 시점이 청소년기이다. 일단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여 진로의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고2 학생이 쓴 저널 한 편을 소개한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로 시작하여 5분 동안 쓴 저널이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 그리고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가게 되는 거 같다. 중학교 때 꿈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공부도 하기 싫었기에 그냥 놀았던 것 같다. 이렇게 마냥 놀기만 하다 보니 어느새 중3이 되었다. 이렇게 계속 놀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노숙자로 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CSI라는 미드는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프로파일러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그제야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공부해야지 라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누구인가’란 남이 보는 모습이 아닌 나의 진짜 모습을 말하는 것 같다.
이 저널에서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자아정체성과 함께 진로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미국의 교육지도자 파머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물으라고 하였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통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찾아가게 된다.
이 답을 찾기 위해 학교와 상담 장면에서 가장 많이 실시하는 것이 진로검사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동시에 실시할 수 있고, 온라인으로도 가능해서 유용한 방법이다. 진로검사 대부분이 개인 특성에 적합한 직업을 매칭하는 홀랜드Holland의 직업선택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교사나 상담자가 검사결과를 해석해 줌으로써 진로에 대한 합리적인 결정을 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검사결과지를 받은 아이들 중에는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과연 내가 이런 사람일까? 정말 내게 이런 일이 적합할까? 자신들이 직접 체크한 자가진단의 결과인데도 의구심을 보인다. 우리 청소년들은 자신의 성격, 흥미, 적성, 가치관과 학업 능력, 부모의 의견, 사회적 여건 등을 고려한 진로 결정만이 최선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즈음에는 자유학년제, 선택교과, 진로교과, 진로 프로그램, 수시 확대 등으로 예전보다 진로결정을 위한 다양한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입시 준비가 청소년기를 압도하여 자기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세워 나갈 여유가 부족하다. 많은 대학생들이 진로 문제로 학교상담센터를 찾는다고 한다. 비정규직으로 고용의 불안을 안고 첫 직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취업한 지 얼마 안 되어 이직하는 신입회사원들도 많다. 빠르게 변화되는 직업 환경에서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진로문제는 진학과 취업으로 종결될 수 없다.
청소년 개개인이 올바른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진로란 삶의 방향이요, 미래의 행복과 관련이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아야 하고 급변해 가는 세상에 대처하는 유연성과 적응력도 길러야 하는 청소년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사비카스Savickas는 진로를 직업 세계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삶을 구성해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개인 특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 따라가는 진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진로를 강조하였다. ‘나’가 ‘일’을 찾고, ‘일’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일’이 생계수단을 넘어 ‘나’를 행복과 자아실현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비카스Savickas는 진로상담의 목표를 자신의 언어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실제로 행동하도록 하며 의도적인 성찰을 통해 자신의 삶과 미래의 의미를 구성해 나가는 데 두었다. 저널테라피를 통해 하고 싶은 것도 청소년들이 자신의 언어로 진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과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진로를 구성하며 자신만의 진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도록 돕고 싶다. 다음은 저널테라피를 경험한 아이들 느낌의 일부이다.
◦내 꿈에 대해서 쓸 때 솔직히 그 직업에 대한 간절함은 항상 있었지만 내가 얼마나 그 분야에서 재능이 있는지 모르고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게 두려웠었는데 저널을 쓰면서 더 마음을 열게 되고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었다.
◦저널을 쓰면서 변화된 점은 가장 중요한 전공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고집하던 것을 다른 걸로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전공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전공이 바뀌면서 부담감이랑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마지막 8회기 저널을 쓰면서 그런 마음까지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저널테라피가 참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잠깐 글을 쓴다는 것 어찌 보면 사소한 작업 같았지만, 저널을 쓸 때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이 샘솟았다.
◦글을 쓰면서 꿈에 대한 나의 목표가 다시금 뚜렷해지는 거 같았고, 꼭 이뤄야겠다는 목표의식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공부와 스트레스로 인해 잠시 잊고 있던 먼지 쌓인 내 꿈을 다시 돌아보고 소중히 여길 수 있었다. 저널을 쓰면서 꿈을 이루기 위한 의욕의 꺼진 시동을 다시 걸 수 있었다.
저널 쓰기를 통해 아이들은 어떤 경험과 생각들이 자신의 진로 이야기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과 주변의 장애물에 대해서도 자각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의 힘은 표준화된 심리검사나 진로검사 없이도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진로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저널을 쓰면서 형성된 자기 인식에 대해 수필처럼 적은 소감문 한 편을 소개한다. 저널테라피를 통해 만난 자신을 ‘조각보 이불’에 비유하였다.
나는 저널을 쓰면서 조각보 이불이 되었다. 외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조각보 이불을 우리 엄마는 지금도 애지중지 아끼고 자랑스러워 한다. 오래 된 이불이지만 우아하고 아름답다. 서로서로 몸을 맞대고 이어져 있는 조각들이 버려질 천조각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지금 그 이불이 된 느낌이다. 그동안 나는 내가 예쁜지도 몰랐고 소중한지도 몰랐다. 아무렇게나 버려도 되는 천조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그 조각들을 다 모아서 보니 ‘소중하고 예쁜 나’가 되었다. 내가 쓴 저널 덕분에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나온다. (2010년 11월)
이 아이처럼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고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 걸어가도록 진로 위에서 동반하고 싶다. 저널테라피와 함께!
혹시 사비카스Savickas의 진로구성이론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국내에 번역된 <커리어 카운슬링>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