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어, 우리 딸.
2024년 3월 18일
"엄마 오퍼 언제 와?"
3월 들어서 매일 하는 아이의 질문이다.
"곧 올 거야 조금만 기다리자. 우리 딸을 뽑지 않으면 임페리얼이 손해야. 기다려보자"
반신반의하며 아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한 나의 대답이다.
"맞아, 왠지 꼭 갈 것 같아"
"그럼, 뛰어난 인재를 꼭 알아볼 거야. 작년에 이맘때쯤 왔는데, 올해 인터뷰를 작년보다 늦게 했으니 오퍼도 늦게 줄지도 몰라. 3월 말에는 올 거야."
매일 질문과 답을 하며 이런저런 핑계 속에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었다.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3월 15일 금요일 밤. 다시 한번 오퍼 메일이 오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 오늘까지 오지 않은걸 보니 한주 더 결과를 기다려야 함에 실망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주말아침, 잠에서 깬 아이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엄마, 오퍼 왔어'라고 감정 없이 말을 건넨다. 눈을 뜨자마자 메일 확인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본인의 바람을 담아 장난치는 거라 생각하며 대답했다.
"아이고, 얼마나 기다렸으면... 오퍼 오는 꿈을 꿨어?"
"아닌데, 왔는데? "
"그랬세여? 그럼 메일 보여주세요~"라고 장난스럽게 받았다.
"여기" 무심한 듯 보여주는 스마트폰에는 진짜 오퍼 메일이 와있었다.
"어~진짜네? 밤사이 메일을 보냈나 보네. 우리 딸 고생했어. 너무 축하해~"
드디어, 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오매불망 기다리던 오퍼가 왔다. 기뻤다.
3월 초부터 오퍼가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고 기다린 것도 있고 수학 시험을 다시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애매한 상황이어서 더 기다림이 절실했다. Further Math 성적을 받지 못할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A*가 아닌 A를 받았기 때문에 오퍼 상태에 따라서 다시 시험을 쳐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고 시험 신청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빨리 답이 와야 했다.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모호한 상태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힘들었다. 물론 그사이 천당과 지옥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빨리 시간이 지나가긴 했지만, 일이 하나하나 해결될 때마다 잠시 한도 하며 다음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들은 몇십 배로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당연히 붙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다가도 문득 작년에 점수를 맞추지 못한 전력이 있어서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인터뷰를 했다는 건 거의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면접관이 관심이 덜한듯한 느낌에 만족할만한 인터뷰를 하지 못한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어 하루에도 수십 번 온탕 냉탕을 왔다 갔다 했었다.
아이는 기쁨을 맘껏 표현하지 않는다. 한번 쓰라린 경험 했기에 더 신중해진 것 같다. 그리고 넌지시 말을 건넨다.
"엄마 기뻐?"
"응, 우리 딸이 원하는 대학에 가게 되어서, 그리고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인 것 같아서 너무 기뻐."
"그럼 됐어. 엄마가 기쁘면 됐어"
"너는 안 기뻐?"
"응, 당연히 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다지~ㅎㅎ"
맘고생을 했으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럽다. 작년에도 오퍼를 받았을 때 당연히 갈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렇지 못했기에 좀 더 조심하는 것 같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장 영국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하던 대로 한국에서 지내게 될 테니. 그래 아직은 잔잔한 고요함을 즐기고 서서히 파도가 되어 충분히 와닿을 때 마음껏 기뻐해도 돼. 고생했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