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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민 May 11. 2024

불의, 외면에 대하여

외면 말고 분노가 필요하다.

인간은 불의와 외면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욕망에 지배되어 불의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맞닥뜨리곤 한다. 불의의 생산자는 공동체 내 가해자가 된다. 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다양한 형태의 불의는 통제 가능성은 있지만 절대 사라지진 않는다. 한편,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불의의 소비자(1차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 간접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불의를 외면한다고 피해자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외면은 또 다른 불의를 낳는 어두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외면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네트워크로 인한 강한 연결이 늘 공감을 불러오는 것 같진 않다. 접촉이 많아졌다고 평화와 우정이 넘치는 행복한 세상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접촉은 새로운 갈등과 불의를 유발하고, 우리는 점점 쉬운 외면에 익숙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일례로 디지털 플랫폼에서 우리는 정치의 양극화로 인한 수많은 불의를 빠르게 접하고, 혐오의 세상을 회피하는 부동층이 증가하는 소위 외면의 세상에 살고 있다.     


연민은 외면의 다른 형태일 수 있다.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 공정하거나 공평하지 않은 불의를 접할 때 양심 있는 우리는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타인의 고통> 저자인 수전 손택은 이렇게 주장한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불의로 인한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야 한다고.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 말씀과 일맥 통하는 것 같다. 결은 다르겠지만, 실패한 연민은 외면의 결과와 같은 거 아니겠는가.


외면 말고 분노가 필요하다. 외면으로 인한 불의의 무한 생산 생태계를 근절하기 위해 우리에게 있는 분노가 대방출되었으면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조치가 필요해!” 마사 누스바움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이를 ‘이행 분노(Transition-Anger)’라고 했다. 항의를 통해 앞으로 전진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고통을 숙고하기보다 해결 방법을 찾는 분노다. 외면과 프로 불편러가 아닌 이행 분노자들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분노의 목소리를 듣는 유능한 사람이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관심 또한 필요하다. “유능한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때 받는 최대의 벌은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을 상기해 본다.     

 

불의와 외면은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개선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불의를 외면하지 말고 직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개인적인 변화와 사회적인 변화를 이루는 첫걸음일 것이다. 나아가 외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외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은 외면하는 세상에 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AI에 의한 빅데이터 분석으로 외면 원인이 파악되고, 문제 해결에 인간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러면 인간은 외면을 외면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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