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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lehLee Mar 11. 2023

자라섬은 섬이 아니다

자라섬 그리고 재즈페스티벌

자라섬


자라섬은 섬이 아니다. 섬이 되고자 몸부림치지만, 그는 섬이 될 수 없다. 자라섬은 하천이기 때문이다. 하천과 섬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같은 땅, 흙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그것이 땅이냐 하천이냐에 따라 할 수 있는 행위에는 커다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자라섬이 처음부터 섬이었던 것은 아니다. 1942년 청평댐이 생기면서 댐으로부터 15km 떨어진 남이섬과 자라섬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 이전까지 자라섬도, 남이섬도 섬이 아니었다. 남이섬은 강원도와 연결된 토지였고, 자라섬은 가평군에 붙어 있는 토지였다. 청평댐이 생기면서 연결된 땅이 물이 차올랐고, 물에 잠기지 않고 동그라니 남은 남이섬은 그렇게 섬이 되었다. 자라섬은 조금 다르다. 자라섬은 물에 잠기지 않는다. 가평군 달전리와 연결된 토지는 지금도 걸어서 갈 수 있다. 일 년 내내 이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물에 잠긴 모습보다 겉으로 드러난 땅을 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남이섬은 섬이 되었고, 자라섬은 하천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이섬은 어떤 경우에도 물에 잠기지 않는다. 태풍과 집중호우가 와 소양강댐 수문을 열어 엄청난 물을 방류해도, 청평댐을 막아 그 많은 물이 갇혀 서서히 차 올라도 남이섬은 잠기지 않는다. 그래서 섬이다. 하지만 자라섬은 365일 내내,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잠기지 않다가 10년 만에 한 번 오는 거대한 집중호우에 잠기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평소 육지와 연결되었음에도 하천이 되었다.  

남이섬은 개인 토지이다. 하천은 국가 소유이다. 그래서 남이섬은 '주식회사'이고 자라섬은 '국가하천'이다. 남이섬 안에 건축물과 조형물, 화장실 등이 있는 것에 비해, 자라섬 안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건물을 짓든,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하든, 개인이 몰래 무언가를 쌓아 올리든 그런 행위가 불법이다. 그래서 자라섬에는 꽃과 나무와 잔디만 있다. 여의도 강변에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만 있는 이유는 그곳이 하천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화장실조차 만들 수 없다. 

토지와 하천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자라섬이 관할인 가평군에서는 이 넓은 토지를,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이 천혜의 땅을 이용해 보려 무진 애를 썼지만, 용이 될 수 없는 이무기처럼 자라섬은 북한강에 몸을 묻고 꿈틀거릴 뿐이었다. 

사실 가평군은 배가 아팠다. 남이섬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질투가 났다. 바로 인근 한 두 개의 섬이 하나는 토지라는 이유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고, 다른 하나는 하천이라는 이유로 손도 댈 수 없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평군은 이 토지를, 하천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용역을 주었다. 민간 기관에 예산을 집행하여 활용 방안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 자라섬을 하천이 아닌 토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재 높이에서 8m를 더 높여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큰 홍수가 와도 물에 잠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된다면 지목 변경도 가능할 것이다. 하천에서 대지이든 농지이든 토지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결해야 할 매우 많은, 그리고 어려운 과제들이 앞에 있었다. 우선 국가로부터 이 하천을 매립하여 8m를 성토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내야 한다. 하지만 국가에서 가평군이라는 지방자치단체에게 하천을 매워 토지를 만들라는 허가를 내줄 이유가 없다. 남이섬처럼 개발하려 한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국가에서 하가를 내준다 해도, 이 많은 면적에 흙을 부어 8m를 높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렇게 하여 토지로 바꾼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허가를 받도 예산을 투입하여 성토를 한 뒤에 민간에게 매각하여 남이섬처럼 개발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하드웨어는 만들 수 있지만 그 안을 채울 소프트웨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니, 더 이상 이 일을 추진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자라섬은 골재 채취장이 되었다. 강 모래를 퍼 파는 회사에 운영권을 허가하여 매일 대형 트럭이 드나들면서 강바닥의 모래를 퍼 날랐다. 이 허가권은 일 년 단위로 갱신되었고, 수년 동안 이어져 왔다. 모래를 퍼내던 곳을 제외 한 다른 곳은 자갈과 들꽃과 바람 만이 사람들이 발길 없이 자라고 있었다.     


출러:나무위키 '남이섬'편


'자라섬'이란 지명은 가평군청에서 지은 것이다. 자라섬이라는 이름 전에 이곳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자라섬'도 있었지만 '중국섬' 또는 '중곡섬'이라고 불렸다. 그다지 중요한 곳이 아니니 사람들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던 것이다. 0000년 가평군청은 '지명위원회'를 열어 이 섬의 이름을 짓기로 한다. 위원들은 우리의 땅을 '중국섬'으로 불리는 것에 반감이 컸다. 그래서 '자라섬'이라는 명칭을 주기로 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라섬 인근에 있는 자라처럼 생긴 '자라목'이라는 곳이 있고, 이 자라목이 내려다보는 형상이라 '자라섬'으로 지었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자라섬 이전에 왜 사람들은 '중국섬'이라고 불렀을까?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확실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다만 해방 이후 몇몇 중국인들이 이곳에서 참외나 땅콩 농사를 지으며 살아 '중국섬'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중국인들이 어디서 온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정말로 중국인들이 농사를 지었는지도 확인이 안 된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청평댐이 생기기 전부터 지역 주민들이 참외 등 농사를 지어왔다는 것인 주민들의 증언이다. 실제로 중국인들이 농사를 지었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전쟁에서 낙오된 중국 군인들 중 일부가 잠시나마 정착했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이름을 자라섬으로 지었다고 섬이 된 것은 아니었다. 수년마다 큰 홍수가 지면 물에 잠기기 때문에 하천으로 분류되었다. 이곳은 지금도 물에 잠길 가능성을 안고 있다. 왜 '가능성'이라고 했는가? 예전보다는 물에 잠기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태풍과 집중호우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큰 비가 오기 전 물을 충분히 빼주어 물에 잠기는 일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 예보가 정확하다 해도 큰 비가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북한강 상류의 소양강댐의 수문을 열면 자라섬은 잠긴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잠긴다'라는 표현을 썼다. '쓸어간다'가 아니고 '잠긴다'이다. 많고 빠른 물이 세차게 자라섬을 흩고 지나가지는 않는다. 청평댐이 닫힌 상태에서 소양강댐을 열면 청평댐의 수위가 점점 차오르고 그 높이는 15km 떨어진 자라섬까지 미치게 된다. 수위가 올라가면서 자라섬이 잠기는 것이니 빠른 물살이 흩고 지나가는 것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만약 빠른 물살이 휩쓸고 지나간다면, 자라섬은 지금의 자라섬으로 남을 수가 없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강의 일부로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기는 현상이니 그곳에 나무를 심어도, 작고 간단한 조형물을 설치해도 물이 빠지면 원상태로 돌아온다. 때문에 가평군에서는 지속적으로 나무를 심어 자라섬을 가꾸어가고 있다. 비록 그곳이 하천이지만 토지로 만들고 싶은 가평군의 갈망은 마르지 않는다. 


남이섬이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임에 비해 자라섬은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출처 : Earth2

위 지도의 아래쪽에 남이섬이 있다. 그래서 아래쪽에 있는 길쭉한 섬이 남도가 된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중도에서 열린다. 서도나 남도에서도 행사가 열리지만 메인 공연은 중도에서 펼쳐진다. 사진의 왼쪽이 가평군의 달전리이고 오른쪽의 숲은 강원도 춘천시이다. 경계는 동도와 숲 사이의 좁은 강물이다. 강원도와의 경계가 자라섬 동도 오른쪽으로 지어진 것은 가평군 입장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자라섬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섬의 소유권(비록 하천이기는 하지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계가 지어진 이유는 강물의 깊이 때문이다. 가장 깊은 곳을 기준으로 경계가 지어지는데, 이 기준에 따라 남이섬은 강원도 소유로, 자라섬은 가평이 된 것이다. 

자라섬의 면적은 614,710km로 알려져 있다. 남이섬의 1.5배라 한다. 맑은 북한강물이 섬을 감싸고 흐른다. 서도에서부터 남도까지 이어지는 안쪽은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어, 겨울에는 두꺼운 얼음으로 덮인다. 섬을 따라 풀이 자라고, 물속에는 수초가 있어 많은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덩어리의 섬이 아니라 서도, 중도, 남도 그리고 동도로 나뉘어 있어 자연스럽게 구분이 된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생길 수 있는 섬의 구조이다. 보통의 섬들이 강물이나 바닷물을 주위에 두는 것과 달리 자라섬은 강물과 호수를 다 가지고 있다. 서도에세 시작하여 남도로 이어지는 안쪽은 호수와 같기 때문이다. 

원래는 각 섬이 분리되어 있었다. 사진을 보면 섬을 연결하는 가는 도로가 보인다. 이것은 골재를 채취하기 위해 회사에서 놓은 것이다. 골재 채취장은 남도의 끝쪽에 있었다. 사진에 하얗게 모래가 쌓인 흔적이 보인다. 대형 트럭들이 골재를 실어 나르기 위한 도로가 필요했기에 지금의 길이 생긴 것이다. 서도부터 남도까지 사람들이 발길이 닿은 것에 비해 동쪽의 두 개의 섬은 푸른 나무로 덮여 있다. 길이 놓여있지 않아 자연 상태로 남은 것이다. 가평군에서 자라섬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동도에 대한 계획은 없어 보인다. 자연 상태로 남기고 싶거나 자연 상태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자라섬은 가평역으로부터 2km 거리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역에서 내려 섬의 입구인 서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이 채 안된다. 섬이 길어 남도 끝가지 가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보기에 충분한 거리이다. 버스터미널은 더 가깝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에는 기차와 버스에서 내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라섬을 향해 걸어간다. 그들 대부분의 손에는 돗자리가 들려있다. 메고 있는 가방에는 음식과 와인 또는 맥주가 들어있다. 경험 많은 사람들은 우산이나 파라솔도 준비한다.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밤이슬은 차기 때문이다. 자라섬에 도착한 그들은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편다. 굳이 무대 앞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멀찍이 떨어져 귀로는 재즈를 즐기고 음식과 대화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음향은 멀리 있어도 재즈를 즐기기에 충분한 음량을 가지고 있음을 사람들은 알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이어진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주최하는 쪽과 즐기는 쪽이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다. 


가평과 재즈. 이 조합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가평에 재즈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재즈가 있는데 이유가 있을 이유가 필요한지를 따진다면 할 말은 없지만, 재즈페스티벌이 열리기 전 가평에는 재즈와 관련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물며 재즈바나 재즈 공연장도 없었다. 가평 출신의 유명한 재즈뮤지션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 즉 군수가 재즈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도 아니다. 가평에 국내 최대를 넘어 아시아 최대의 재즈페스티벌이 열리게 된 것은 우연과 필요라는 두 요소의 결합에 의한 산출물이다. 무엇이 우연이었고 또 무엇이 필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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