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해 만들었니?
일본 세무사(세리사)다운 글을 하나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mois.go.kr/frt/sub/a06/b06/hometownLovedonation/screen.do
한국에서도 올해부터 `고향사랑기부제`가 시작되는데 (실무진 실수로 현행 법령상 시행일이 2년 뒤가 된 모양이지만) 이는 일본의 후루사토-고향-납세제도(ふるさと納税)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도입한 것입니다.
내용을 슥 둘러보니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작용을 해소하면서 본래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제도설계가 되어있어서 참 연구를 잘했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일본의 `고향납세제도`는 취지는 좋을 수 있어도 실제로는 매우 문제가 많은 제도입니다.
납세자 개개인에게는 아무 손해볼 것도 없는 제도이긴 하나, 장기적으로는 좀 오버해서 이야기하면 재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결함투성이 제도입니다.
일본의 고향납세제도는 실제 고향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다른 지자체를 선택하여 기부를 하면, 해당 지자체에게 기부자에게 답례품을 제공하고, 해당 세액은 기부자의 소득세 혹은 주민세에서 거의 100% 세액공제해주는 제도입니다. (실제로는 기부금공제액 = 연간기부액 - 2천엔)
보시면 아시겠지만, 단순히 세금의 선납에 불과하나 `답례품`을 받을 수 있으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아니라, 답례품의 가치만큼 약간의 플러스가 남는 것입니다. 대략 1만엔(10만원 정도) 기부하면 큼지막한 샤인머스캣 두 송이 정도 받습니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남는 장사인 것이죠.
고향납세 붐이 일었고, 각 지자체는 경쟁적으로 답례품의 가치를 올려가면서 고향납세 유치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일본은 인구감소 중이고, 지방으로 가면 세수 나올 건덕지가 없는 지자체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지자체도 얼마든지 세수 확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열을 올릴 법도 합니다.
그렇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1. 답례품
원래 취지는 지역 특산물을 답례품으로 되돌려줌으로서 지역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악스러운 답례품들이 하나 둘씩 나오게 됩니다.
지자체에 기부를 하고, 약간의 특산품으로 답례를 받는다는 취지는 사라진 지 오래고,
고향납세 사이트를 보면 그냥 일반 쇼핑몰과 구분이 안갑니다.
세법학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런 고액의 답례품을 개인이 받았다면 과세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애초에 대가성 없이 기부를 했기 때문에 기부금으로서 소득공제도 가능한 것인데, 이미 `소비`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으니, 기부금 소득공제의 취지도 흔들려버리는 꼴입니다.
이제는 고향납세 포털 사업자들끼리도 경쟁이 붙어서 포인트 환급까지 아주 후합니다.
포인트 환급까지 더해서 고려해보면 애초에 고향납세라는 행위가 기부인지조차 애매할 지경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이 고향납세를 10만엔 정도 했다고 쳐보겠습니다. 해당 금액은 특별공제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다고 치면,
(1) 기부액 -10만엔
(2) 소득공제/세액공제 +9.8만엔 (2천엔 차감하므로)
(3) 답례품 +2만엔 (대충 20% 정도의 가치라고 치겠습니다.)
(4) 포인트 환급액 +2만엔 (캠페인대로 20% 환급됐다고 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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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합계 +3.8만엔
따라서 한도 내에서는 하면 할 수록 이득이니, `고향납세 붐`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과세역진성-고소득자일 수록 유리함
두 번째 문제점은 고향납세의 한도 금액이 소득 및 세액에 비례하게 되어있고, 절대적인 금액으로 한도를 정해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 소득세법상 의료비공제의 경우 200만엔을 한도로 공제하도록 절대치로 한도가 정해져있습니다. 이에 비교하면 고향납세는 단순 소득/세액 비례이기 때문에 고소득자일 수록 유리합니다.
(고향납세가 100% 공제되는 한도)
아래 금액 중 낮은 금액.
- 소득세 기본분 : 총소득금액 등 X 40% +2천엔
- 주민세 기본분 : 총소득금액 등 X 30% + 2천엔
- 주민세 특례분 : (주민세 소득할 X 20%) / (1-소득세율-주민세율) +2천엔
주민세(세율 10%)가 연간 20만엔 나오는 회사원이면 고향납세가 100% 공제되는 한도가 소득세율 10%구간이라는 가정 하에 대략 5.2만엔입니다.
(20만 *0.2 / (1-0.2)+2,000=52,000)
이에 비교하여, 주민세가 수백만엔, 수천만엔씩 나오는 고소득자는 그만큼 한도가 늘어나게 됩니다. 소득할이 한 300만엔 나오는 고소득자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한도는 대략 120만엔입니다.
(300만*0.2 / (1-0.5)+2,000=1,202,000)
대입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기부액. -120만엔
(2) 소득공제/세액공제 +119.8만엔
(3) 답례품 +24만엔
(4) 포인트 +24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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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합계 +47.8만엔
1번에서 밝혔듯이 현재 구조로는 하면 할 수록 이득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와규가 됐든 샤인 머스캣이 됐든 일년 내내 배터지게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것도 공짜로.
3. 세수의 중간착취
위의 그림에서는 심플하게 표현하기 위해 제외했습니다만, 사실 등장인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위의 스크린샷과 같은 고향납세 대행 사업자들입니다.
이들은 당연히 공짜로 일을 해줄 수는 없기 때문에 수수료를 떼고 지자체에 해당 금액을 납입합니다.
지자체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B 지자체 입장에서는 없던 세수가 공짜로 생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납세제도가 없었다면, 납세자의 1만엔은 온전히 100% A지자체의 세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향납세제도가 있음으로서 세금 빼먹는 중간업자가 하나 들어오게 된 겁니다.
이미 카와사키시나 세타가야구와 같이 주민들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서는 고향납세로 인한 주민세 세수 유출이 심각하다고 몇 번 뉴스에도 나온 바 있습니다. 한국은 모르겠으나 일본에서는 세법학적으로 주민세는 지자체의 행정 서비스, 인프라의 이용대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고)
그렇게 보면 세수가 빵구나게 되면 언젠간 그러한 인프라의 개선/정비에도 지장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A지자체, B지자체를 합쳐서 생각해보면 돈이 어디론가 샌다는 말이니까요.
물론 내각에서 정한 제도이니만큼, 위의 예를 들면 A지자체의 세수가 빵꾸난 부분의 75%는 중앙정부에서 교부금으로 보조해주도록 되어있습니다. 100%가 아니라 75%라는게 해당 지자체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중간에 빼먹힌 돈을 왜 국세에서 보조해주냐는 근본적인 물음은 남아있습니다.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는 100% 공제되는 금액을 10만원으로 제한했으니 부작용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 그만큼 일본과 같은 붐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10만원까지는 확실한 이득을 볼 수 있으니 누구나가 10만원까지는 꽉꽉 채워서 기부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일본의 고향납세제도는 납세자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혹시 일본에 근무하시거나 사업하시는 분 계시다면 한도까지 꽉꽉 채워서 하시면 됩니다. 한도는 계산해봐야 알 수 있긴 하니 1~11월에는 조금만 하시고 12월에 고문계약한 세무사에게 물어보시고 나머지 한도까지 채우시면 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제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도가 있을때 많이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