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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불 Jan 24. 2023

60대 독거노인의 원룸 입주문의

초고령사회에서 살아남기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투자용으로 보유하는 원룸 하나에 갑자기 공실이 났습니다.


월세로 부동산투자 하시는 분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그" 단어.


일본에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본의 경우 신학기, 입사, 전근 등 웬만한 인생 이벤트는 4월부터 시작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1-3월에 입주 및 퇴거, 이사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제 원룸의 경우 공실이 5월에 나버렸으니 꼬여도 한참 꼬인 셈입니다. 4월이 지나가면 신입사원, 전근, 입사를 위해 움직였던 사람들이 대부분 거처를 정한 후이기 때문에, 딱히 경쟁력이 있는 물건이 아니라면 운없으면 장기간의 공실을 각오해야 합니다.


관리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자마자 골치가 아파왔습니다. 예전에 입주했던 사람은 사회초년생이었는데, 물어보니 회사를 이직하여 멀리 이사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간다는 사람 억지로 잡아둘 수는 없으니, 즉시 부동산 회사에 방을 내놓았고,  그렇게 한 달이 흘러갔습니다. 


연식 오래된 물건에서 공실 한 번 나면 골치 아픕니다. (사진은 본건과 아무 관계 없습니다.)


한달 뒤에 부동산 회사를 통하여 입주문의가 왔습니다.

여기서 1차적으로 집주인이 입주신청서를 보고 입주 OK or NG 사인을 내는데, 이걸 흔히 입주심사라고 합니다.


저야 하루빨리 공실을 채워넣어야 하는 입장이다보니, 입주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입주신청서를 보고 승인하려고 했는데...



가만 보니 입주예정자분이 무려 60대 후반의 일본인 할머니였던 것입니다.

고작 6평짜리 원룸과 60대 후반의 어르신이 매치가 잘 되지 않아 순간 뇌정지가 왔습니다.


`월세는 무슨 수입으로 내려고 그러나?`

`이렇게 좁고 아무 것도 없는 방에서 할머니가 혼자 살겠다고?`


아니, 그보다도 머리 속에 흘러가는 키워드 "고독사" 


일본에서 부동산 찾아볼 때 특기사항에 `고지사항 있음` 혹은 `심리적 하자 있음` 이라고 빙빙 돌려서  표기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 자살, 고독사, 사고사, 살인사건 등, 꺼려지는 사건들이 있었던 물건입니다.


일본에서 법적으로 심리적 하자 물건의 경우 반드시 일정기간 입주희망자에게 고지하여야 하며, 당연히 그런 집에 제 값 주고 입주할 사람은 없기 때문에, 부동산 투자자로서는 재앙과도 같은 사건입니다.


오오시마테루 같은 사고물건 전문 검색 사이트에 뜨기라도 하면 두고두고 골치아파집니다. 아예 처분하려고 해도 제값 받기는 글렀고...


일본 전국의 사고물건(심리적 하자 물건) 검색 사이트 오오시마 테루. 불난 곳 클릭해보면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https://www.oshimaland.co.jp/


눌러보면 요런식으로 나옵니다.  자살사건이 있었네요.


단칼에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공실이 길어지면 물건 수익률이 악화되기 때문에

이유라도 물어보려고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부동산 회사에서 알아서 커트해주셔야 되는거 아닌가요?"


"그게 아드님께서 어머님 살 집을 찾는다고 사정을 하셔서... 여기저가 많이 거절당하셨나봐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아들 부부와 동거하고 있던 어머니가, 아들에 부담주기 싫어 나가겠다고 한 것 같았습니다. 월세는 국민연금으로 받은 돈에서 내겠다고.


순간 그 얘기를 듣고 한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동정심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인생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편 없이 아들 신세를 지다가 아들에게 부담주기 싫어 방을 얻어 나가려는 어머니... 그러나 노후를 위해 쌓아놓은 재산은 없으니 저렴한 원룸을 찾아다니는 모습.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노후 대책이 잘 되어있는 분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본인 소유 자가가 있다면 굳이 나올 이유가 없을테고, 돈이 많았다면 굳이 6평짜리 원룸을 들어올 리가 없으니까요.


일본의 연령별 금융자산 보유 실태조사 60대 이상이 압도적인 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60대이상 20% 이상)에 진입한지 오래 되었으며, 고도성장기에 경제활동을 했던 윗세대(60대 이상)이 젊은 세대에 비해 압도적인 부를 축적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평균은 평균이고, 많이 가진 사람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덜 가진 사람도 있는게 인지상정이고, 윗 세대가 부자라는 일본에서도 노후대책의 미비 등으로 노후의 안락함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사회보장비용의 증가는 불가피하고, 이를 감당해야 할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보다도 돈이 없는(!) 세대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앞으로 우리 세대가 노후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작은 원룸 하나 의지하여 외로운 노후를 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입주 신청은 어떻게 되었냐면... 결국 거절했습니다.

사고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고, 또 제 원룸의 경우 키친 설비도 변변찮기 때문에 할머니 본인도 불편하리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지금도 종종 생각이 나는데 노인빈곤 문제가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님을 새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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