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 회계 등 실무 경험이 있으신 분을 대상으로 분개 퀴즈를 하나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제)
사업자가 아닌 제가 중고 게임샵에 가서 게임 하나를 현금 11,000엔에 중고로 매각했습니다.
사업자 입장에서 회계처리가 어떻게 될까요? 부가세(소비세)율은 10%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는 사업자가 아니고 반복/계속적으로 중고 게임을 팔아먹을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일본의 소비세(부가가치세)법에 근거하면 정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답)
상품매입 10,000 / 현금 11,000
매입부가세 1,000
한국에서 실무 하시는 분들이 일본에 오셔서 경리실무를 접하시면 가장 처음에 혼란스러워하는게 소비세 처리입니다. 분명 일본의 소비세나 한국의 부가가치세나 컨셉은 똑같은데 실무 운영이 너무나도 달라서 그렇습니다.
위의 예를 보시면 분명 사업자가 아닌 자(일반인)으로부터 매입을 해도 매입세액공제가 가능한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인인 제가 소비세(부가가치세, 이하 소비세로 통일합니다.)를 신고/납부하느냐? 하면 당연히 하지 않습니다.
현재 일본의 소비세법은 매입하는 재화나 용역이 과세에 해당하면, 상대방이 누구든 매입대가의 110분의 10만큼의 매입세액공제를 인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에는 한국 및 EU처럼 `세금계산서`라는게 따로 존재하지 않고, 상대방이 개인사업자인지 일반인인지, 그리고 면세사업자인지 아닌지 구분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이야기도 이제 옛말이 됩니다.
일본에서도 이제 2023년 10월 1일부터 인보이스 제도(적격청구서등보존방식)가 도입되고, 해당 인보이스는 국세청에 등록한 인보이스 발행 사업자만 발행 가능하기 때문에 이제는 사업자/일반인 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보이스`가 뭐냐면, 바로 tax invoice, 한국의 세금계산서와 같은 적격증빙을 뜻하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사업하시는 분들은 부가세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어쨌든 세금계산서 끊고 장사하는게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위화감이 없으실텐데,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일본에서는 영세사업자, 프리랜서 등을 말려죽이는 법인이다! 라면서 크게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소비세법은 과세사업에 해당하더라도 특정 기준 (2년 전 매출액이 1,000만엔 이하 등)을 만족하면 소비세의 납세의무를 면제해왔습니다. 따라서 매출분 부가세-매입분 부가세만큼의 이익이 면세사업자의 손에 떨어지는(!) 세제로 인하여 이익을 얻는 구조였습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세사업자 구분이 안되기 때문에 상대방을 가리지 않고 매입세액공제를 인정하였기 때문에, 소비세가 단계별로 고객에게 전가되는 메카니즘이 매우 불투명하였습니다.
그걸 이제는 `과세사업자(정확히는 인보이스 발행 사업자)`를 구분하여, 인보이스(세금계산서)에 근거하여 매입세액공제를 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구매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면세사업자에게 같은 돈 주고 구입해봤자 그만큼 매입세액공제를 못 받기 때문에 과세사업자와 거래하려고 할 것입니다.
일본의 소비세법이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 배경에는 1989년 소비세 도입 당시의 `원죄`가 있었습니다.
원래 소비세 도입 전에는 일본에는 개별소비세만 있었고, 부가가치세와 같은 일반소비세는 아예 제도가 없었습니다. 그걸 일반소비세로 과세대상을 넓히게 되었으니 조세저항이 거셀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조차도 부가가치세 도입이 부마항쟁의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정도이니, 일반소비세 도입이 깎아먹는 지지율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조차 없겠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타케나카 내각은 조세저항을 달래기 위하여 많은 것을 양보합니다.
(1) 납세의무 면제 특례 등
(2) 매입세액공제는 장부방식
인위적인 정책논리로 면세의 구멍을 여기저기 만들었기 때문에 이후로 소비세법은 과세측과 납세자측의 처절한 두더지 게임이 펼쳐집니다.
(1) 납세의무 면제 특례 등
- 매출액 기준 : 처음에 3,000만엔 이었다가 기준이 너무 높다고 생각했는지 슬쩍 2004년에 1,000만엔으로 내림.
- 자본금 기준 : 돈 많은 신생회사(자본금 1천만엔 이상)의 경우 매출액 기준에서 제외.
- 모회사 기준 : 돈 많은(?) 대기업 자회사들도 같이 납세의무 면제가 되니까, 2014년 개정으로 특정 대기업 자회사는 해당조항에서 제외해버림.
- 매입액 기준 : 매출액이 없는 초년도에 거액의 설비투자, 재고자산 투자를 하여 매입세액공제로 소비세 환급을 받고, 정작 매출이 발생하는 수년 후에 슬쩍 매출액 기준으로 면세를 받는 꼼수(?)가 상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행하였기 때문에, 2016년 개정으로 거액의 매입을 한 경우 면세조항에서 제외.
(2) 매입세액공제 방식
- 장부방식 : 과세사업자의 납세 사무부담을 달래기 위해서(?), 보관한 증빙 상관없이 회계장부에 회계처리한 내용만 가지고 매입세액공제를 인정하겠다는 것.
- 청구서 등 보존방식 : 청구서,영수증 등 그래도 증빙은 보겠다는 것.
- 구분청구서 등 보존방식 : 세율이 8%, 10%로 다변화되면서, 청구서에 그래도 `세율은 구분해서 써주세요`하는 것.
- 인보이스(이하 `세금계산서`로 통일합니다. ) 방식 : 2023년 10월 시행. 한국에서 시행 중인 세금계산서 제도와 골자는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일본의 소비세법은 태생부터가 입법 측에서 지지율 눈치를 보다가 누더기로 만들어버린 법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세금계산서 제도 도입의 의의는 명백하나, 문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줬다가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상기하였듯 장부방식과 각종 납세의무 면제제도에 익숙해진 납세자, 회계사/세무사와 같은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것이 변화하기 때문에 반발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재 회계시스템이나 세무사의 세무신고 Fee나, 모두 간편한(?) 현행제도 기준으로 최적화(Fee수준도) 되어있는 상태에서, 세금계산서 기준으로 이것저것 구축하거나 업무부담 늘어나면, 그 돈은 니가 줄거냐? 하는 얘기입니다.
세무사 입장에서도 지금까지는 결산 때만 좀 손보면 소비세 신고서가 완성되는 구조였습니다만, 이제는 세금계산서의 적격성을 체크해야 하는 수고가 추가됩니다. 세무신고 보수를 올려받지 않는 이상 수익성 악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만, 과연 쉽게 올릴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세금계산서 제도는 최종소비자에 이르기까지의 소비세의 흐름을 투명화할 수 있고, 현행 매입세액공제가 불합리하기 때문에 도입의 의의가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왕 도입하는거 리더십을 발휘해서 잘 도입하기라도 하면 좋겠습니다만, 이야기는 또 그렇지 않습니다.
(1) 새로운 특례 조항 (불과 시행 10개월 전에 특례 추가!)
- 기존의 납세의무 면제 사업자가 세금계산서 발행 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기한은 있습니다만 공급가액분 20%만 납세하면 됩니다. 세금계산서 발행 사업자가 될 경우 자동으로 과세사업자가 됩니다.
- 단, 납세의무 면세 사업자가 `과세사업자(납세의무 면제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선택한 경우의 위의 특례 없음. 즉, 20% 특례를 받기 위해서는 과세사업자 선택은 하면 안 되고, `인보이스` 발행만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 세금계산서 발행 사업자 등록도 원래는 2023년 3월이 기한이었습니다만, 등록상황이 시원치 않은지 2023년 9월까지도 가능하도록 슬쩍 연장하였습니다.
(2) 면세사업자 매입분의 매입세액공제 특례
- 경과조치로서 해당제도 시행 후에도 면세사업자로부터 매입에 관한 매입세액공제를 아래와 같이 인정합니다. (경과조치이기 때문에 강제적용)
2023년 10월~2026년 9월 : 매입세액 상당액의 80%
2026년 10월~2029년 9월 : 매입세액 상당액의 50%
경리실무 경험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부가세 코드를 별도 관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번거롭습니다.
특히 아래 (4)와 합쳐서 보면 실무의 혼란을 불가피하다고 하겠습니다.
(3) 과세 유/불리 선택 조항
(1)과 더불어, 납세자는 20% 특례와 간이과세, 원칙과세의 유불리를 매 신고기간마다 판정하여 신고할 수 있습니다. 간이과세 제 1종 사업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20% 특례가 유리하다고 생각됩니다.
(4) 세금계산서 양식은 알아서 하세요
세금계산서의 `필요적 기재사항`만 정의하고 세금계산서의 표준양식을 제정하지 않았습니다. 국세청 오피셜 왈, 상거래의 관행에 관청이 개입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미 해당 제도 도입 자체가 개입한 것과 다름이 없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세금계산서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회사마다 발행하는 양식, 사이즈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에 눈으로 빠르게 판정이 안됩니다.
심지어 세금계산서에 `발행사업자번호(사업자등록번호 같은 것)`가 누락되어 있어도, 다른 서류에서 누락된 내용이 확인될 경우 해당증빙은 적격한 증빙으로 인정한다는 실무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가이드까지 내놓았습니다.
일본의 세무사(세리사)나 현장 실무 및 납세자 입장에서는, 해당 거래처와 관련된 모든 서류(계약서, 이메일, 납품서, 견적서 포함)를 모두 살펴보고 적격한 세금계산서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 그리고 당연히 전자세금계산서 제도 없습니다. 다 종이거나 PDF입니다.
일본의 세금계산서 제도는 이제 시행까지 불과 8개월 남겨놓은 상태입니다만,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건데 제도의 파행은 불가피해보입니다. 입법 측에서 리더십과 리스크를 회피하였을 경우 어떠한 제도의 파행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실무를 하다가 일본으로 왔기 때문에 세금계산서에 익숙합니다만, 그런 입장에서 말하건대 `할 거면 제대로 하고, 말 거면 말아라!`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