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자주 벌어지는 논쟁(우스갯소리로 하는 논쟁까지 포함해서)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부먹 vs 찍먹 논쟁과 비교할 만한 것 중에서, 부동산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집 사기 vs 평생 월세로 살기"가 있습니다.
해당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래 전 처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떼 "이게 대체 뭔소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집이야말로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자산이자 재산증식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매일 성실하게 일해서 저축/투자하는 목적 중 하나가 임대에서 벗어나 자기집을 사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평생 월세로 살기"가 "집 사기"와 대등한 논쟁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감각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유를 살펴보면 그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버블 붕괴의 경험
일본은 이미 80년대 부동산 거품 피크를 찍고 90년대 이후로 처절한 거품 붕괴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위의 아름다운 그래프를 보시면 명확합니다. 이런 걸 한 번 겪고 나면 주택의 자산가치의 믿음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2. 일본에서는 주택이 감가상각자산
과거 일본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현재의 일본에서는 주택은 감가상각자산입니다. 세무,회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자동차처럼 신차 구입해서 한 번만 타보면 바로 중고차로 전락하고 가치가 폭락한다는 점입니다. 또, 연식에 따라 기본적으로 가격이 계단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3. 인구감소로 인한 부동산 가치 저하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일본은 실시간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당연히 주택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자산이 플러스 자산이 아니라, 부의 자산, 즉 마이너스 자산에 불과한데 그걸 왜 가지냐? 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5,000만엔에 산 맨션이 있다고 치고, 월 관리비/수선충당금으로 3만엔 정도 들어간다고 하겠습니다. 해당 맨션의 가치가 30년 후에 2,000만엔까지 떨어졌다고 치면, 30년 간 월세 11만엔씩 내고 산 것과 뭐가 다르냐? 하는 주장입니다.
(5,000만-2,000만) / 30년 / 12개월 + 3만엔 = 약 11.3만엔
여기다가 고정자산세(재산세) 부담에 주택론 이자부담까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4. 유지보수비용
주택을 구입하면 고정자산세(재산세), 수선비 등은 모두 집주인의 책임이 됩니다. 얼마 전에 키시다 내각에서 빈집의 경우 고정자산세 감면 특례에서 제외 검토하겠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수선충당금이 거의 형식적으로 걷고 있는 정도고, 대부분 재건축을 생각하기 때문에 100년을 보고 수선계획을 세우고 충당금을 적립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일본 맨션의 경우는 법적으로 적절하게 수선계획을 세우고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보통 맨션의 경우 수선적립금만 월 2만엔~5만엔까지 적립해서 이러한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5. 재건축도 거의 없다.
맨션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일본의 경우 어지간히 과거에 지은 물건이 아닌 바에야, 이미 용적율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재건축 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본 전국의 재건축 사례는 역사상 누계로 2021년 기준 단 263건 밖에 안됩니다.
일본 구분소유법상 재건축은 조합원의 3/4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마저도 4/5에서 완화된 것), 연수가 오래된 맨션의 경우 대부분 거주자가 고령층이고, 용적률에 여유가 없으니 무상으로 재건축 들어가긴 어렵고, 그러면 결국 돈이 없어서 재건축은 못하고, 건물 노후화로 인하여 수선비 증가로 수선적립금은 무한으로 늘어나고, 그러다보면 또 여유있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이사)가고...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현재까지는 "집 사기"의 승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1. 주택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다.
첫번째 이유로는 주택의 가치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주택 가격은 요 몇년간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특히 도쿄도의 맨션 가격은 버블 때 가격을 이미 능가했다는 뉴스마저 나올 정도입니다. 체감상으로도 5-6년 전에 3,4천만엔이면 살 수 있었던 주택이 이제는 6,7천만엔은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제로금리 정책, 원자재값 인상, 주택론 공제 등 정책적 어시스트도 있었지만 그래도 인구감소에 따라 주택 가격이 곤두박질칠 것이다...라는 예측은 현재로서는 어긋난 셈입니다.
2. 노후대책은 있는가?
"월세파"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소득이 계속된다는 전제를 은연중에 깔고 있습니다.
집을 샀을 경우 가치가 폭락했을 수는 있어도 은퇴 이후에도 해당 집에 유지비만 부담하면서 계속 거주하면 됩니다. 이에 비하여, 월세파의 경우 저축을 잘했다면 모르겠으나 재산이 없고 수입이 연금 밖에 없을 경우 현역 시절에 내던 월세를 그대로 부담할 수 없기 때문에 주거환경의 악화가 예상됩니다.
물론 인구감소는 팩트이기 때문에 초장기적으로 봤을 때 주택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주택론 공제 등의 정책적 어시스트를 포함하여 감안하면 일본에서도 집은 사는 편이 낫다고 감히 주장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