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펜 클루게(Espen Kluge/이하 클루게)의 예술은 NFT아트 장르 중에서도 독특한 편입니다. 음악에 맞춰 그림이 움직이죠. 아니, 정확하게는 음악 연주와 그림의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에스펜은 작곡가이자 비주얼 아티스트로 직접 코딩을 배우고 만들어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생성 예술가입니다. 회화, 영상, 음악, 조각 등 여러 예술 분야가 융복합하며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가운데 에스펜의 NFT작품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서정적인 감성으로 감상자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게요.
우선 생성예술은 제너러티브 아트(Generative Art)라고도 불리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알고리즘을 만들고 그 알고리즘에 따라 창작하는 예술을 말해요. 초기의 생성예술에는 다소 단순한 형태의 조형적 요소, 즉 도형, 색, 크기, 두께 등의 각 요소들을 조합해 무작위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본인 작가 Shunsuke Takawo의 Generativemasks가 유명한 NFT 생성예술 작품 중 하나인데 2022년 국내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어요. 2D형태로 마스크가 여러가지 형태로 조합되어 생성되는 NFT였습니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미드저니(Midjourney), 달-이(Dall-E) 등 인공지능을 통해 쉽게 생성예술을 만들어 볼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죠. 꼭 예술분야가 아니더라도 각종 디자인이나 원하는 이미지를 쉽게 만들기 위해 인공진능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에스펜 클루게의 작품은 생성예술 중에서도 음악과 영상을 리듬에 맞춰 조합한 독특한 스타일이에요. 클루게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TV와 영화음악 작곡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요. 27살이었던 어느 날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키보드'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이 키보드는 PC키보드가 아닌 건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이 연주를 하면 실시간으로 키보드에 그 음에 맞는 불이 켜지는 것이죠. 클루게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합니다. 처음에는 한 달이면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만들어낼 줄 알고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수 년이 걸렸다고 하네요. 일단 관심있는 분야를 시작하면 마음먹은 것을 성취해낼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끈질김이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시간 키보드 아이디어는 결국 특허까지 이어졌는데, 이후 계속해서 코딩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림이나 영상에 음악을 결합한 것은 아니었는데요. Alternatives(대안)이라는 이름의 시리즈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로 인물사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알고리즘으로 만든 초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온라인에서 가져온 사진을 벡터화하여 표현한 것인데 100일 동안 100개의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코딩에 따라 결과물이 무작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여러 차례의 테스트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원하는 결과'란 다소 특이하거나 낯설게 보일 수 있어도 신선하고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말합니다. 이처럼 생성 예술은 단순히 코딩 후 결과물만 기다리는 것이 아닌데요, 코딩 전 구상, 코딩, 다수의 실험, 수정과 최종선택 등 일련의 과정이 종합적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물사진을 선택할 때도 표정이 뚜렷하거나 입을 벌리고 있는 사진을 선택하는데, 메이크업을 한 댄서처럼 과장된 느낌의 사진의 결과물이 보다 선명하게 나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대안 시리즈들은 이후 서정적 수렴(Lyrical Convergence)이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재탄생합니다. 기존 대안(Alternatives) 시리즈 작품들의 데이터에서 파생된 시리즈인데 '서정적 수렴'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아련한 어감으로 여러 번 되뇌게 됩니다. 이미지들을 비교해 보면 '대안'에서 '서정적 수렴'으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안에 사용된 색 팔레트가 서정적 수렴에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추상적인 이미지로 바뀌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물들의 복잡미묘한 심정이 느껴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