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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낙하 Sep 18. 2022

'나', 그리고 나의 '이야기'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또 다른 '나'를 찾아서

'나'는 누구인가?

사춘기 시절,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 와서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나'에 대해 제일 잘 아는 것은 '나'라고 하면서도, 막상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려고 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나는 2022년 현재 스물여섯 살의 대학생이다. 3학년에 다니고 있으며, 학점도 사회생활 경험도 모두 부족하다.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궤도를 걷고 있지만, 그런 사람치고는 한없이 평범한 사람. 남들보다 느리게 걸으면서도, 좀처럼 서두르지 않는 느림보 거북이. 나를 구태여 설명하자면, 이러한 문장들로 설명할 수 있겠다.


스무 살, 처음으로 입학했던 대학교를 일 년 만에 그만두고, 서울에서 학원을 다녔다. 외국 유학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만큼 나는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일본 유학을 준비하며 일본어와 함께 유학 시험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었는데, 일본어 이외의 모든 부분이 형편없었다. 면접 준비는 더더욱 어려웠다. 예상 질문을 적고, 답변을 준비하면서도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간과했던 것은 내가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일본 유학이라는 헛된 꿈에 사로잡혀 나의 마음 역시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행복하지 못한 추억이었다. 엄청나게 큰 일은 아니지만 조그마한 일들이 모이고 모여, 나를 슬프게 했다.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가까운 친구는 없고, 이렇다 할 특기도 말재주도 없는 평범한 학생. 장점이라고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과 지각하지 않는다는 성실함 뿐. 친구들 사이에서는 곧잘 나서는 편이었으나, 막상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섞인 자리에서는 제대로 나서지도 못하는 소극적인 학생.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의 나는 어른들 사이에서도 숫기 없는 애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우관계에 있어 몇 번의 문제를 겪다 보니 조금씩 위축되고 내성적이게 된 것이다. 외부 환경을 탓하거나, 그 시절 문제를 겪었던 친구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땐 모두 어렸고, 미숙했다. 성인이 된 지금 만났다면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일로 싸웠고, 조금 더 성숙해진 뒤에 만났다면 문제조차 되지 않았을 일로 서로를 미워하고 멀리했다.


이제 와서 그때의 일을 들추어내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어리고 미숙했던 시절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절의 내가 받은 상처나 속상한 감정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유학 준비에 실패하고, 부모님과의 상의 끝에 한국 대학에 다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 2월이었다. 나에게는 일 년간의 새로운 공백이 생긴 셈이다. 그제야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났고, 미뤄왔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며 처음으로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정신과 병원에 방문하였다. 늘 나의 곁에서 떠나지 않던 불안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언제까지 회피하며, 없는 감정인 양 도망치듯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신과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2020년, 대학에 합격하고도 일 년을 꼬박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더 이상 병원에 다니지 않게 된 지금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온전히 벗어났음을 느낀 것은 2학년 1학기를 마친 뒤였다고 생각한다.


3학년 2학기를 맞이한 지금의 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올해 스물여섯이고, 학점도 사회 경험도 부족한 대학생이다. 남들이 보기엔, 긴 공백을 가진 경력도 이력도 부족한 그저 그런 대학생 1이겠지만, 나는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의 일들,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나 취직할 일을 생각하면 막연한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안해하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남들은 그저 공백이라고 생각할 기간 동안,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내가 무얼 할 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불안을 안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한 마음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 불안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고, 어떻게 다루는 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일 때가 많았다. 막상 그때가 되면 불안해하고 걱정했던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말 그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들,


그렇기 때문에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면, 불안한 생각만큼 행복한 생각을 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세상에 완벽히 똑같은 사람은 없다지만, 사람은 자신과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도를 느끼거나 위안을 얻기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한때는 나 혼자만 뒤처진 것 같다는 우울함과 불안감에, 필사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 헤매곤 했다. 남들보다 느리게 걷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지금도 나는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또 다른 '나'를 찾고 있다. 또 다른 '나'에게 당신처럼 느리게 걷는 사람이 여기 또 있다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에,


내세울 만한 것이 있어서는 아니다.

막연한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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