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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낙하 Sep 18. 2022

무계획 인간 'P'의 분투기

계획적인 사람이 되기 위하여

내 MBTI는 'ENTP'이다. 그것도 극단적으로 치우친 'P'. MBTI를 맹신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느 정도 참고는 하되, 기본적으로 재미로 보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MBTI 검사 결과지에 극단적으로 'P'에 치우친 그래프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MBTI를 떠나서, 나는 자타공인 계획이라고는 없는 무계획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살고, 아무렇게나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본 경험은 적다. 가령, 혼자서 부산으로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을 간다고 친다면, 내가 미리 하는 일은 한 달 전에 기차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는 것뿐이다. 혼자서 여행을 몇 번 다녀왔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언제나 두루뭉술했다. 부산에 간다면 매일매일 바다를 보고, 현대미술관에 들러 전시도 본 다음, 오랜만에 부산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도 해 봐야겠다. 예전에 본 예능에서 부산에 가서 국밥을 먹는 게 맛있어 보였으니 국밥도 한 그릇 먹고 와야지. 나의 계획은 언제나 이쯤에서 끝났던 것 같다.


 날짜별로 일정을 정리하는 것은 고사하고, 동선 계산조차 하지 않고 일단 도착해서 가고 싶은 곳부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여행,


여행이라면 구체적인 계획 없이 떠나도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공부를 할 때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시험공부 계획을 세우겠답시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오늘은 수학 공부를 하고, 내일은 국어를 하고, 모레는 영어를 해야지. 문제집도 조금 풀고, 숙제도 조금 해야겠다.' 정도가 전부인 사람. 당연히 성적은 중위권을 맴돌았고, 거기서 더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내신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렇게 살아도 괜찮았을지 모르겠지만, 대학교 3학년이 된 지금의 나는 문득, 나의 계획력에 문제를 느끼게 되었다. 2학년까지의 학점을 돌아보며 3학년 때는 정말로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했지만, 3학년 1학기 성적은 내가 생각하고 노력한 만큼 잘 나오지는 않았다. 속상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동안 혼자 고민도 해보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어본 끝에 나는 내 계획을 세우는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대학교에 와서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당장 눈앞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만 급급고, 시험공부는 시험이 코앞에 닥쳐서야 부랴부랴 시작했다.


당장 계획을 세우는 법을 고칠 필요가 있었다. 계획을 어떻게 세우는지 배우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유튜브 등에서 계획을 세우는 방법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친구 한 명은,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스케줄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느낀 점은 지금까지 내가 세웠던 계획은 엉망진창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단기 계획은 세울 줄 알았지만, 장기적인 계획이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달력에는 과제 마감일, 시험 날짜는 표시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분배해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월간 계획은 없었다. 월간 계획이 없으니 학기별 계획이나 연간 계획은 있을 리가 만무했다.


친구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스케줄러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작은 수첩을 하나 사서 첫 페이지에 학기별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번 학기에 꼭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적었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월간 계획을 적었다. 이번 달 안에 해야 하는 자격증 시험 접수 등의 계획들을 적었다. 적어놓고 보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학기별 계획, 월간 계획을 적고 나니 조금이나마 세부적인 계획에 대한 감이 잡혔다. 중요한 일, 조금 덜 중요한 일을 나누는 기준도 조금은 감이 올 것만 같았다.


이번 학기에 내가 해야 하는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한 JLPT N1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다. 9월에는 접수 기간 내에 접수를 해야 한다. 접수를 위해서는 사진이 필요한데, 나는 최근 6개월 이내에 찍은 사진이 없으므로 사진관에 들러 새로운 증명사진을 찍어야 한다. 12월 초에 시험이 있기 때문에 학기 중에 학교 공부와 더불어 JLPT 시험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


이렇게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노트에 적고 나니 이전까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던 것에 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장기적인 일정을 파악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예전이었다면, '오늘은 학교 과제나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JLPT 공부를 해야겠다' 정도로만 계획을 세웠겠지만, 이제는 '10월에는 중간고사 기간이니까 9월까지는 과제나 간단한 복습 이외에는 JLPT 공부에 시간을 할애하고, 10월부터는 중간고사를 위한 공부 위주로 해야겠다.'는  보다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학점을 잘 받는 사람들이나, 이미 계획을 세우는 일이 습관화된 사람들에게는 '저게 뭐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글로 자랑까지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스물여섯 해동안 제대로 된 계획을 세워보지 못한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이 뿌듯함이 앞으로 더 나아가고, 보다 나은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계획을 세워본 적 없는 사람의 계획은 남들이 보기엔 아직도 엉성할지도 모른다. 계획적으로 살아본 적 없는 나에게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른다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꾸준히 점검하고 노력해야지.


그렇기에 계획적으로 살고 싶은 'P'의 분투기는 'P'의 분투기일 수도, 피의 분투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P'의 분투기를 글로써 남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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