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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Jun 24. 2024

SKY 대학을 졸업한 30대 백수

SKY 대학 졸업. 그게 인생의 최고점이었을 줄은 몰랐다. 졸업 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에도 세상은 빠르게 돌아갔다. 나는 어느덧 30대로 접어들었고, 아직까지 직업이 없는 백수이다. 아마 정신과에 간다면 우울증 진단을 받을 것을 확신한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질병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스스로 진단하게된 것은 토익 시험을 치러가야 하는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날, 나는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다. 늦잠을 잔 건 아니었다. 낮밤이 바뀐 채로 생활했던 것은 맞지만 그날은 알람 소리를 듣자마자 눈을 떴다. 그러나 도저히, 정말 도저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힘이 나지 않았다. 어떤 거대한 바위가 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토익 시험 못치면 어떡하지'가 아니라 '그냥 이대로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였다. 겨우 토익 시험 보러 갈 힘도 없는데,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의 생존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 자조 섞인 한탄을 읊조리다보면 그 끝은 언제나 가족에 대한 원망에 닿는다.


언젠가 엄마에게 내가 받았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마음에   정도의 상처가 있다면 그중 가장 가벼운 것을 아주 오랜 시간 고민해서 고르고 고른 다음, 내가   있는 모든 용기를 끌어 모아 조심스럽게 꺼낸 하나였다. 엄마는 내게 기껏 키워놨더니 이제와서 부모 마음에 못을 박는다며, 그렇게 소심해서 어떻게 살거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입을 닫았다. 그렇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시간 정도 엄마의 원망을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엄마에게 사과했다. 엄마는 나를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가족을 잘 안다.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란 것을, 내게 화살을 돌릴 거란 것을. 그리하여 내가 포기하는 게 덜 아플 거란 것을. 무조건 참는 것이 내겐 언제나 우월전략이었다. 그렇게 삼키고 외면하고를 반복하는 동안 내 속이 곪아가고 내가 아프게 될 거란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요즘 내가 견딜 수 있는 압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끼고 있다. 밥솥이 뻥, 하고 터지기 직전까지 이르고 만것이다.


다만 나는 사과받고 싶다. 나에게 가혹했던 가족이라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리하여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글로 마음에 아주 작은 숨구멍이라도 뚫어 놓을 수 있다면, 그 숨구멍으로 어떤 감정을 내보낼 수 있다면, 터지기 직전인 밥솥의 압력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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