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확산론의 비현실성과 위험성에 대해
화이트홀 브리핑은 실무와 연구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최신 안보 이슈를 분석합니다. 뉴스 요약을 넘어, 저만의 해석을 찾아가는 과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2-Point Summary
1. 미국의 Foreign Affairs지 11월 19일자 기사에 '미국의 동맹국들이 핵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정확히는 동맹국들 중에서도 '일본, 독일, 캐나다' 입니다.
2. 이러한 주장은 미국의 고립주의가 핵문제까지 확장된 형태로, 실상은 미국 자신의 이익을 해치고 비확산규범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무모한 생각으로 보입니다.
※ 외국 독자를 상정하고 쓴 글을 번역한 것이라 다소 이질감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I. 들어가기
최근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실린 기고문 “America’s Allies Should Go Nuclear”는 핵무기 각자도생 시대로의 초대장처럼 읽힙니다.
핵확산이 오히려 국제정치적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이들이 처음은 아닙니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케네스 월츠가 오래전에 그러한 주장을 했고, 또 다른 석학인 스콧 세이건과의 논쟁은 핵확산 연구 분야에서는 거의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논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적 엄밀함과는 달리, 최근의 이 기고문은 일련의 낙관적인 가정들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I. 저자들의 실제 주장
제가 읽기에 이 기사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기존의 비확산 중심 핵 질서는 낡았으며, 미국이 캐나다, 독일, 일본의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거나 심지어 장려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이들 국가가 각 지역 방어에 대해 더 완전한 책임을 지게 하고, 미국에 지워진 짐을 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 이 세 국가일까요? 저자들의 논리는 첫째, 이들 국가가 다른 미국의 동맹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주의 국가이며. 둘째, 일단 핵무장을 하면 러시아와 중국을 더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어 미국의 자원 소모를 줄일 수 있으며. 셋째, 지리적으로 인접한 행위자로서 먼 곳에 있는 미국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제 이 논리에 내재된 문제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II. 비확산 규범의 본질에 대한 오해
NPT(핵확산금지조약)를 중심으로 한 비확산 체제에 한계가 있으며, 조약 밖에서 움직이는 국가들을 통제하는 데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1968년에 체결되어 1970년에 발효된 NPT는,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곧 수십 개 국가가 곧 핵무기를 보유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던 그 궤도를 완만하게 만드는 데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의 사례가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훗날 그 유명한 ‘비핵 3원칙’을 주창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사실 1967년 내각조사실 내 ‘민주주의 연구회(Minshushugi Kenkyu Kai)’라는 조직을 통해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연구했습니다.
이 연구는 당시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할 기술적 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으나, 1970년에 나온 2차 보고서에서는 핵무장에 따른 정치적, 외교적 비용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핵무기 국가로서 예외적인 수준의 핵 잠재력(nuclear latency)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핵무장의 길을 걷지 않기로 한 결정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핵 금기(nuclear taboo)뿐만 아니라, 예상되는 정치.외교적 불이익에 대한 냉철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핵확산 연구의 오랜 수수께끼 중 하나는 기술적 용이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극소수의 국가만이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설명은 다양하지만, NPT는 핵무기 획득을 고려할 때 예상되는 정치적, 평판적, 그리고 제재와 관련된 비용을 높임으로써 각국의 셈법을 형성해 온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일본, 독일, 캐나다처럼 오랫동안 글로벌 규범의 관리자를 자처해 온 G7 국가들조차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이미 도전을 받고 있는 조약의 정당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NPT는 타결되던 당시부터 이미 불평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실제로 많은 비핵 국가들이 서명은 했으나 비준을 미루기도 했을 정도로 취약한 기반 위에서 작동해 왔습니다.
저자들은 ‘좋은 확산’과 ‘나쁜 확산’을 구별할 수 있다고 암시하지만, 그 범주를 누가 정의할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만약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 기준을 정한다면, 이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오랫동안 지켜온 비확산 체제 자체를 약화시키는 꼴이 됩니다. 게다가 국제 질서를 수정하려는 다른 강대국들도 각자 자신만의 기준으로 누가 핵을 가져도 좋은지 주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장 큰 모순은 미국이 자신의 규범적 권위를 급격히 침식할 행동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그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데 있습니다. NPT의 근간은 차등화된 책임보다는, ‘우리가 핵무기를 추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당신들도 그래야 한다’는 (비록 비핵 국가들 사이에서긴 하지만) 평등의식에 있습니다. 이것이 무너진다면 기존의 비확산체제는 무너질 것입니다.
III. 지역 역학에 대한 오독
저자들은 국가를 역사, 문화, 심지어 감정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체스판의 말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국제 정치 이해 방식을 보여줍니다. 현실 세계의 정치는 ‘A이면 B이다’와 같은 단순한 관계를 따르는 경우가 드뭅니다.
우선, 프랑스가 핵무장한 독일을 환영할지, 혹은 미국이 자국 본토 위쪽 캐나다에 핵무기가 배치되는 것을 편안해할지는 여기서는 더 적지 않겠습니다.
좀 더 가깝게 일본의 이웃 국가들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자들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 구조에 긴밀히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이 핵무기를 획득하더라도 한국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한국이나 일본 중 한 곳이 핵무장을 추구할 경우 다른 한쪽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핵 개발 결정이 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국내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사뭇 다릅니다. 한미 동맹의 지속적인 취약점 중 하나는 한국이 일본과는 달리 ‘2류 동맹’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인식이며, 이는 반미 정서를 부추기고 미중 사이에서 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만약 일본의 핵무기 획득은 허용되면서 한국은 거부된다면, 그러한 불평등감은 현저하게 심화될 것입니다.
게다가 핵무장한 일본이 미국보다 동아시아에 더 즉각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형태의 핵 억제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도 매우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워싱턴을 파리와 맞바꿀 의향이 있는지 물었던 샤를 드골의 유명한 질문은 도쿄와 서울, 혹은 도쿄와 타이페이 사이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IV. 역사적 맥락의 부재
저자들은 외교사의 저명한 학자인 Marc Trachtenberg를 거론하지만, 정작 역사적 맥락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미국이 단일 지역 패권국의 부상을 막는 데 장기적인 전략적 이익을 가지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옳습니다. 워싱턴이 추구해 온 것은 단순히 또 다른 지배적 강대국의 부상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주요 전략적 사안에서 주요 의사결정권자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독일과 일본의 핵무장을 장려하자는 제안은 훨씬 더 큰 역사적 감수성을 필요로 합니다. 이들은 그들의 역사적 궤적이 보여주듯, 지역 패권국이 될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국가들입니다.
현재 그들이 미국의 선호에 동조하고 국제 규범을 준수하고 있다고 해서,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그들의 장기적인 야망과 계속 일치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한, 국제 규칙을 준수한다는 것이 반드시 미국 우위의 위계 질서에 협력한다는 것과 동의어도 아닙니다.
나아가 준수해야 할 국제 규범의 틀 자체가 변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도 잠재적으로 더 강력한 일본이나 독일 같은 국가들이,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점차 더 자율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질서는 필연적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동시에 현재 미국으로부터 받는 안보 공약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게 된 다른 지역 행위자들은 대안적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전개는 전체적으로 ‘現’ 국제 질서의 구조와 의미를 모두 변화시킬 것입니다. 저자들이 바라는대로 핵무장한 독일과 일본이 러시아와 중국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미국이 글로벌 안보의 중심에 서 있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스스로 행동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그들이 계속해서 미국에 의존해야 할 이유는 거의 없습니다.
V. ‘싸고 빠른’ 핵무기라는 신화
저자들은 미국이 유럽에서 발을 빼기 위해서는 독일이 신속하게 재무장해야 하며, 재래식 전력을 재건하는 데 따르는 여러 어려움을 감안할 때 핵무기가 더 현실적이고 빠른 대안을 제공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오해와 닮아 있습니다. 한국에서 핵무장에 대한 대중의 높은 지지는 종종 그 비용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핵무장은 싸지도, 빠르지도, 간단하지도 않으며, 구체적인 필요 사항들을 알게 되면 핵무장 지지율은 상당히 떨어집니다.
논의를 위해 핵무장이 정치적으로 승인되었다고 가정하고, 관련된 단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한 일본을 부분적인 예외로 치더라도, 탈원전을 추진해 온 독일 같은 국가는 즉각적으로 어디서 핵분열 물질을 얻고 어떻게 재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만약 미국이 묵시적 승인을 넘어 무기급 농축 물질까지 실제로 제공한다면, 이는 단순히 비확산 체제를 약화시키는 것을 넘어 그 관 뚜껑에 마지막 못을 박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필요한 농축 물질이 확보되어 핵폭탄을 개발했다고 해도, 운반 수단(delivery)의 문제가 남습니다. 독일과 일본이 원론적으로는 핵 투발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항공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지 모르나, 탄도 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같이 신뢰할 수 있는 핵 억제력과 전형적으로 결부되는 시스템은 부재합니다.
설령 그러한 투발 플랫폼이 구축된다 해도, 이를 운용, 보호, 지원하기 위한 추가적인 군사 자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물리적 구성 요소가 확보된 후에도, 신뢰할 수 있는 억제력은 여전히 믿을 수 있는 지휘·통제·통신(NC3) 체계의 구축과 그것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광범위한 훈련 및 절차적 숙달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해 볼 때, 신뢰할 수 있는 독자적 억제력이 등장하기까지 상당 기간 동안, 재래식 방어를 강화하는 데 쓰였을 자원들이 복잡한 핵 프로젝트로 전용될 심각한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유럽의 방어막은 실제로 더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와 중국은 선제적이든 보상적이든 더 강력한 대응책을 채택할 모든 유인을 갖게 될 것이며, 이는 안보 환경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미국이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발을 빼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아니면 거의 모든 잔존 영향력을 희생하는 대가로 발을 빼든지요.
어느 쪽이든 미국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선별적 핵무장이 현재의 틀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일지는 결코 명확하지 않습니다.
VI. 핵 오리엔탈리즘(Nuclear Orientalism)?
저자들이 지목한 캐나다, 독일, 일본이 다른 국가들보다 본질적으로 더 합리적이거나 책임감 있는 핵 보유국일 것이라는 가정에는 아무런 경험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러한 가정은 일종의 핵 오리엔탈리즘에 해당합니다. 즉, 특정 국가는 기본값으로 책임감이 있다고 상상하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잠재적인 문제 사례로 취급하는 세계관입니다.
모든 국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며, 오늘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안정적이라고 간주되는 국가가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독일, 캐나다보다는 일본이 익숙해서 자꾸 일본 예를 들게 되지만, 1981년 쓰루가 방사능 누출 사고나 후쿠시마 원전 멜트다운 같은 사건들을 상기해 보면, 일본이 핵무기를 다루는 데 있어 다른 국가들보다 명백히 또는 영구적으로 더 자격이 있다고 자신 있게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저자들은 심지어 북한도 큰 문제 없이 핵무기를 운용해 왔으니 캐나다, 독일, 일본도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기준점이 된다면, 핵무기를 보유하기에 적합하다고 간주될 수 없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요?
결론
현재의 비확산 체제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이 제안한 선별적 핵무장은 더 평화로운 세계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 같지 않으며, 미국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도 특별히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은 전통적인 역할이 부담스럽다고 느낄 수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일종의 고립을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택된 소수의 동맹국들에게 핵무기를 쥐여주고 사실상 ‘각자 알아서 하라’고 말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전략적으로나 규범적으로나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학문적 작업은 응당 새로운 관점을 환영해야 하며, 슘페터가 지적했듯 혁신은 종종 파괴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들의 주장은 창조적 파괴라기보다는 순수하고 단순한 파괴에 가까워 보입니다. 핵무기의 확산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이미 취약한 국제 질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통념은 친숙함을 넘어 심지어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틀린 말인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