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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pro Nov 09. 2023

영화리뷰 #6.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지독한 낭만주의자,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삶을 녹여내다.

주의:

위 글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장하려면 '도피'도 필요하다


전형적인 소년 만화 주인공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현실에 맞서 싸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은 다르다. 그는 현실로부터 도망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작품 속 주인공 마이토는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겪은 소년이다.

마이토는 전쟁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었다. 그러나 세계는 소년의 상실에 감응하지 않는다.

마이토의 아버지 또한 아들의 상처에 관심이 없다. 아내의 사망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재혼을 하며(심지어 그 상대가 아내의 동생...) 마이토에게 더 큰 상처를 입혔다.


마이토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숙하게 행동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혐오한다.

또래 아이들 간 관계에서도 철저히 '외부자' 취급을 받는다.

군수품을 팔아 부를 축적한 아버지 밑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는 자신과 기근으로 인해 고통받는 또래 아이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체면밖에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다.

또래 아이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돌아온 날, 마이토가 귀가했는데(머리에 스스로 상처를 내고)

아버지란 작자가 하는 말이

'마이토 복수해 줄게' 라니... 아들을 걱정하는 게 우선 아닌가?


마이토에게 300엔을 기부했다고 말하는 아버지...


그렇기에 소년은 이 세계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고,

그저 담담하게 왜가리를 따라서 탑의 세계(이세계)로 향하게 된다.

나츠코 즉, 새어머니를 찾겠다는 좋은 핑계거리로 본인을 납득시키며.



불의 상징- 프로메테우스 신화


영화 속, 히미라는 인물은 불의 화신이다. 탑의 주민들은 그녀를 신처럼 떠받든다.

이 모습은 마치 원시 종교를 연상한다.

인류사에서 '불의 발견'은 대단히 중요하다. 모든 문명 발달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불은 유용했지만 자연에게는 어땠을까?

재앙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인류에게 불은 축복이자 모든 불행의 시작점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의 히미


작품에서 불의 화신인 히미는 마이토의 친어머니이다. 마이토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그의 삶의 의미이자 트라우마의 원인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은 세대이기에, 어쩌면 그의 작품활동 동기가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암시하는 게 아닐까?




마이토가 삶을 긍정하게 된 첫 단추, 그리고 하야오의 후회


마이토는 새어머니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상 그녀를 부를 때도 '나츠코 상' 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선을 긋는다.

본인의 어머니와 똑 닮은 외모.

그는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필시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토는 상실감에 매몰되어 그녀의 상처를 인지하지 못했다.

나츠코 또한 가족인 언니를 잃었다는 사실을.


마이토가 나츠코에게 처음 '어머니'라고 부른 순간


삶 속에서 우리는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입기도 한다.

우린 항상 타인에게 상처 입힌 것에 후회한다.

그런 후회가 우리를 뒤덮는다. 극 중에서 마이토를 휘감는 종이테이프처럼.


"그때 한 번만 상냥한 말을 해주었더라면"


부모님이 늙어 쇠약해지신다면 손을 잡아 드리거나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하자.


본인의 삶에서 후회되는 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하야오의 생각이 드러나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삶을 은유한 인물, 큰할아버지


하야오는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다.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여 결국 현실의 모순과 폭력, 탐욕 등

부정적인 사실들을 제거한 세계를 완성했다.

탑의 주인이 하야오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탑의 형태가 소묘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 배우는 소묘.





노인이 마이토에게 묻는 것처럼 하야오도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말한다.


"나는 평생 완전무결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네.

하지만... 이제 너무 늙었어.

이제 내 세계는 끝났네.

자네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마이토(관객)가 말한다.


많은 친구를 사귈 거라고.

현실을 받아들일 거라고.

행복하게 살 거라고.


골방에서 항상 그림을 그리던 본인의 삶.

관객에게 꿈같은 경험을 선사했던 이가 말한다.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왜가리는 함께했던 지브리의 동료들을 의미한다.


왜가리는 탑의 세계를 안내하는 가이드의 역할을 하지만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한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배신을 하거나, 함께해도 재미있지 않아서,

서로 바빠 연락하지 않게 되어 등등 여러 이유로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생긴다.


왜가리는 지브리의 동료들


하야오도 마찬가지로

지브리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자신의 운영 방침과 맞지 않아 동료와 갈라서는 등

여러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었어도,

왜가리가 있었기에 여정을 마칠 수 있었던 마이토처럼 하야오의 지브리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필자는 하야오의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 서운함이 드러난 캐릭터가 왜가리라고 받아들였다.


결론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길었던 지브리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점. 인간의 모순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태도를 말씀해 주시는

하야오 선생님의 순수함에 정말 감격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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