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는 우화에서 처럼 우리 마음속 깊은 비밀의 방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끼거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솔직할 용기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심지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표현하며 진심을 억누르는 일이 버릇처럼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무의식 속의 서로 다른 자아가 무시무시한 혐오를 뱉어내며 싸우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예의 바르고 친절한 사람이 몹시 흥분하거나 술에 취하면 맹수 같은 무뢰한으로 돌변하는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거다. 사람들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며 살아가지 못한다. 오히려 곧이곧대로 직언을 하거나 지나치게 솔직한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질타와 왕따의 대상이 되고 만다. 오래지 않던 내 직장생활에서 한 상사는 '너는 왜 사람 눈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며 말을 하나?'라고 내 태도를 지적한 적이 있다. 매너가 없고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드는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저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며 내 진심을 전하려던 것뿐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주의해야 할 금기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문명에서건 오래전 지금의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들의 역할을 주술사들이 맡았었고 심지어 공동체의 중요한 결정이나 질병의 치료, 크고 작은 의식도 모두 마을의 원로 격인 샤먼이 주도했지만 현대인들은 길 잃은 마음을 맡기고 조언을 들을 영혼의 스승을 잃은 지 오래다. 그래서 이 시대의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들, 할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다양하고 많아졌다. 화이트큐브의 소통을 너머 실존하는 삶에 이야기를 건네는 행위는 아티스트로서의 내게 중요한 가치다. 살롱 작가로 안주하거나, 골목 담벼락에 천사의 날개를 그리기보다 인간의 본질적인 고뇌와 고통의 치유에 관한 발언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2010년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APAP)에서 참여 제안을 받았다. 모두가 깊숙이 지니고 있는 비밀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보자는 생각에 기쁘게 그해 여름을 맞이했다. 내게는 4명의 화가들이 1년 동안 작업실 바닥으로 쓰던 나무마룻바닥을 뜯어서 제작한 나룻배 한 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배에 관한 소개는 다음에 더 자세히 하기로.)
안양시를 가로지르는 안양천은 큰 비가 내리면 무섭게 범람해서 끔찍한 수해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그리 깊지 않은 도시하천이다.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위해 나는 '뱃놀이합시다'라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사전에 참여를 신청하시는 시민들을 한 주에 서너 분씩 내가 만든 작은 나무배에 태우고 한 시간 남짓 천천히 안양천 위를 노 저어 한 바퀴 돌고 오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대학생, 일반인, 외국인들이 매주 주말에 나들이하듯 나루터로 찾아와 주셨다. 그런데 막상 뭍을 떠난 뒤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었고, 승선 후 간단한 뱃놀이 설명이 끝나면 사공인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노를 젓기만 했다. 안양천의 한가운데에 이르면 물길을 따라 천천히 배를 움직였고, 간단한 인사말 외에 승객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십 분도 안 지나면 어김없이 그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고, 나는 대꾸만 하며 듣고만 있었다. 물 위에 떠서 강 건너 뭍을 바라보면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에 빠져드는 걸까? 불과 십여 미터의 거리인데도 말이다. 이제 슬슬 각자의 이런저런 속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요?', '그래서요?', '정말요?' 정도의 가벼운 맞장구에도 가짜 뱃사공과 마주 보고 앉은 낯선 이들은 고해성사 같은 엄숙함으로 누군가의 험담을, 가족이 주는 서운함을, 이루지 못한 꿈 이야기를 쉼 없이 쏟아내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시원한 생수와 물티슈는 필수 상비아이템. 한 시간은 그렇게 금방 끝나버렸고 우리는 이제 다시 생면부지 남남으로 돌아가야 했다. 할 말이 남아있다면서 한 시간만 더 배를 태워주면 안 되겠냐는 중년여성도 기억나지만 대기 승객들 때문에 사공은 정중히 사절을 하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두고 온 뭍의 일상의 세계로 돌아가며 속이 뻥 뚫리듯 후련하다고, 더 긴 이야기 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고맙다고들 하셨다. 한 시간 동안 자신의 벌거벗은 내면과 낯설게 만나는 그 이상한 뱃놀이는 그들에게 과연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독일에서 11년 살았던 나는 독일인들이 스스로의 덕목이나 특기로 '나는 경청을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랑하는 경우를 본 적이 종종 있다. 그때는 별 걸 다 내세운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흐른 후 이제는 그 자랑거리가 새삼스레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진정한 경청은 특별한 재능이며 쉽지 않은 스킬이다. 어설프게 시작해서 불쾌한 상처만 남기거나, 안 그래도 잘 안 열리는 마음의 문을 더 견고하게 걸어 잠구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라도 자존심이나 자기 방어의 갑옷, 방패를 모두 벗어버린 가장 편하고 느슨한 상태의 자기감정표출이 절실하지 않을까. 어쭙잖은 코칭과 조언도 참기 힘들지만, 중간에 말을 끊고 자신의 멋진 극복사례를 자랑하며 그깟 일로 뭐 그리 엄살이냐며 어깨라도 툭툭 치면 최악이다. 내 배에 오른 괜찮게 잘 살아가는 척하는 승객들에게는 눈만 마주치고 자기들 말을 잘 들어주는 뱃사공이 한 명쯤 필요했었는지도 모른다. 5년째 운영 중인 내 식당에서도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고 처음 만난 지 30분도 안 돼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이런저런 독백을 즐기는 손님들이 가끔 있다. 우리는 모두 외롭다. 그리고 어떤 특효약도 없다.
길었던 그해 여름이 끝나고 프로젝트 결과 전시회에 뱃놀이하던 나룻배를 안양천 다리 밑에 비스듬히 올려놓았다. 그 안에서는 참여자들의 사용동의를 구한 대화의 녹음 파일과, 천천히 젓는 노에 부서지는 물소리, 그리고 강가 가로수의 매미소리가 들리도록 설치했다. 개인 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삭제된 채, 그 더운 여름 안양천의 앰비언트, 승객들이 내뱉는 한숨 소리, 그리고 분절되어 재구성된 비밀의 작은 조각들만이 암호처럼 내 조각배를 울림통 삼아 나지막이 속삭여주었다. 안양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나는 뱃놀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신 분들에게 글을 보냈다.
'지난여름 짧았던 뱃놀이의 낯선 추억을 오래 간직해 주시기 바라며 그 시간이 여러분들의 답답한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들이 나를 기억할 차례입니다.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