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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ly Mar 14. 2024

'소리'를 보여주는 전시

사운드 아티스트의 악보를 주제로 기획한 '악보' 

나는 조형예술가다. 한국에서 미술대학 4년에 독일 유학 11년까지 15년이라는 긴 세월 '미술공부'를 한 사람이다. 대부분 몇 해 걸리는 미대입시 준비기간이 길지 않았던 나는 운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안그랬으면 20년 가까이 미술공부를 거쳐야 했을테니까 말이다. 암튼 나는 20대 초반부터 여태껏 이런저런 이 바닥(문화 예술계)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해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하며 4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에 하루는 아티스트 한 명이 놀러 와서 '사장님은 요식업이라는 다른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순수하게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죠. 저야말로 이 일에 목매고 하루 10시간 넘게 작업에만 열중하는 전업작가입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름'이 '틀림'으로 버젓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은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하던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견고하고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한창 열정적으로 작가활동을 하던 어느 날 박물관에서 조각작품 전시를 하는 단체전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는데, 지금 생각해도 말로 설명이 잘 안 되는 작품과 글을 썼던 일이 있다. 전시 도록의 서문을 발췌해 보면 이런 글이 있다. 


  "거의 수십 년을 시각예술로 살아온 내가 요즘 눈을 감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내게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보인다."


그 전시회에는 조각작품이 놓일 좌대 위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대신 내부 공간을 울림통으로 개조한 스피커를 설치해서 정치에 관한 대담, 라디오 상품광고, 레퀴엠, 그리고 화이트 노이즈를 교차해서 MP3로 무한재생했다. 그리고 바로 그 작품이 조각가인 내가 '소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전자악보에 음표 대신 그림이나 사진을 집어넣고, 뮤지션들에게 연주하게 했고, 관람자의 머리카락을 현악기 활로 연주 했으며, 시각 장애인들과 2년을 함께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소리의 세계를 공연으로 옮기는 프로젝트도 기획했다. 내 소리작품들을 모두 소개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겠다. 20년이 넘도록 소리작업은 내게 커다란 의미와 기쁨을 주었고, 아직도 공연에서 내 소리작품 연주가 끝나면 말로 표현 못할 벅차고 떨리는 감동이 몰아쳐온다. 나는 아직도 악보를 읽을 줄도, 화성법과 펜타토닉이 뭔지도 전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작업실 정리를 하며 오래된 꾸러미들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내 사운드아트 작품구상단계의 스케치, 사진, 텍스트들, 그리고 오브제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그 자료들은 어딘가에 숨어있던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작품'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채 내 눈앞에서 오랜 시간을 묵묵히 함께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악보'라는 개인전을 기획하기로 했다. 스쿨뮤직에 익숙한 눈에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로잉이나 스케치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내게는 지난 20여 년의 연주회나 퍼포먼스들, 형상이나 생각이 소리로 바뀌는 움직임이 한 공간에 집약된 합주였다. '악보'전시의 백미는 오프닝 퍼포먼스였다. 존경하는 주 재환 화백께서 친히 흰 종이패널에 연필로 축사를 써주셨고, 그 연필에는 피에조 마이크가 달려서 종이를 긁는 소리가, 그분의 기운과 신념이 고스란히 소리로 치환되었다. 나는 관람객들에게 촛불을 하나씩 나눠주고 탑돌이를 하듯 바닥에 놓인 그 그림 주위를 천천히 돌며 촛농을 떨어뜨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림에는 서서히 두꺼운 시간과 순간의 층이 쌓였고 어떤 이는 포도주를 뿌리기도, 지폐를 끼워 넣기도 했다. 내게 그 그림은 조형작품이자 사운드 퍼포먼스, 그리고 동시에 회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연남동 퓨전 레스토랑들의 트렌드나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비틀스 같은 무국적 칵테일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뭔가 익숙하거나 통속적인 두 가지가 만나 어우러져서 이로부터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기 위해서는 매우 진지하고 근원적인 연구와 고민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만일 어디에선가 미세하지만 진지하고 생명력 넘치는, '다름'의 극복을 마주치는 순간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주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카테고리와 장르의 구분'이라는 감옥살이에서 하루빨리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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