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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ly Mar 05. 2024

스페이스 미조 개관전 기획

남해군 미조항 복합 문화공간 <스페이스 미조> 개관전 총괄기획 후기

2022년 4월 초 경남 남해군 미조항의 수산물 냉동창고이던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복합 문화센터로 새롭게 문을 연 <스페이스 미조>는 아름다운 남해바다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현대적 건물로, 전시장과 공연장, 그리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갖춰진 매력적인 공간이다. 개관전 총괄기획 의뢰를 나는 주저 없이 수락하고 한반도 남쪽 끝으로 내달렸다. 나비 모양의 작은 섬 '남해도'는 연육교로 뭍과 이어지기 전까지는 배로만 왕래할 수 있었고, 서포 김 만중의 구운몽, 사씨남정기등 대표적인 유배문학작품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인근에 독일마을,  은모래 해변 상주 해수욕장이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남해군의 끝자락 미조항은 전국 제일의 수산물 산지이며 아직도 활기차게 어선들이 드나들고 있다. 미조항이 코앞에 펼쳐지는 곳에 자리한 <스페이스 미조>의 개관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 기획에는 항구 본연의 역동성과 미래 지향적 메시지가 바탕이 되었고 이에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질 공간의 상징적 가치도 함께 담겨야 했다. 

스페이스 미조 전경

우선 대형 전면유리로 바다와 태양이 한가득 들이치는 1층 전시실에는 환경과 예술을 접목시키려는 주제의 작품을 기획했다. 심각한 환경문제로 다뤄지는 해양 폐기물을 미래로의 역동적 상징의 조형물로 승화시키는 내 작품 '항해는 계속된다'는 낡은 스티로폼 부표와 폐어선의 파면을 소재로 뱃머리를 형상화해서 스페이스 미조의 희망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작품 제작에 있어서도 더 이상 쓰레기를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작품을 업사이클링했다. 남해군청의 친절한 도움이 없었더라면 해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폐기물을 수집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고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항해는 계속된다 (2022, 이대일 작, 350 x 220, 폐스티로폼 부표, 폐어선 파편) 

1층 입구 바로 오른편 높은 천장까지 솟아있는 폐 냉동 코일은 스페이스 미조의 역사를 대변해 주는 대형 구조물인데 녹슬고 낡은 파이프들을 두드리고 어루만지고 문지르는 사운드 퍼포먼스로 공간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고 과거의 활기찬 기세를 다시 재현하고 싶었다. 뉴질랜드 출신 사운드 아티스트 이언존 허친슨은 개막행사 이후 문 밖에서 옥상까지 마치 요정과도 같이 명랑하고 활기차고 주술적인 소리와 연주로 힘찬 기운을 공간으로 불어넣어 주었다.  


2층 야외 공간에는 미조항에서 40년 가까이 어선 수리와 용접을 해오신 어르신께 의뢰해서 제작한 철 조형작품을 전시했다. 항구 인근과 작업장 일대에 버려진 엔진의 부속들과 파이프들은 마술사와 같은 토박이의 솜씨로 이제 예술작품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먼바다를 향하고 있는 이 작품 역시 오랜 세월에도 시들지 않은 굳건한 장인의 팔뚝처럼 강건하고 희망찬 수호자로 버텨주리라 믿는다. 


3층 대형 전시장에는 비디오 아티스트 김 해민 작가의 작품을 한 벽면 전체에 프로젝션 했다. 해변의 모래밭에서 떠나고 마중하는 상징적인 영상과 사운드가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고 전시장의 한쪽에 설치된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진 그물 형상의 설치작품은 수중세계로 들어온 듯한 연출로 신비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대구 예술발전소 개관전, 경남 315 예술관 기념전, 광복 60주년 기념전,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전(파리), 제주 43 추모공연을 비롯해 많은 오프닝 전시와 공연에 초대받았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예술가에게 부여되었던 시원적인 역할은 아직도 주술적이고 추상적인 치유, 그리고 이를 극복할 축복의 본질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일본 군마현의 기류라는 소도시에서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는 내 사운드 퍼포먼스를 관람했던 한 노인이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당신이 만든 공장들의 우렁찬 기계소리를 통해 어릴 적 동네의 익숙했던 기름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너무 감격했다. 죽기 전에 이런 기쁨을 주어서 감사한다.'라고 건네던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벅찬 보람과 희열이 기억난다. 감각은 유기적으로 서로 얽혀 있어서 서로 촉발시키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도시와 문명은 생명체와도 같아서 수많은 새로운 생명과 움직임이 '사라져 버린' 것들을 자양분으로, 영감으로 삼고 다시 탄생할 것임이 분명하다. 


개관 이후 다양한 기획전시와 이벤트, 매력적인 볼거리, 먹거리로 많은 관람객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스페이스 미조가 앞으로도 남해군의 문화예술 발전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비단과 같이 수려하다 해서 이성계가 지은 '금산'이 굽어보는 미조항을 지켜주시는 기운이 그렇게 도와주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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