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길 잘했다.
이제 스물을 넘긴 대학생인 그녀가 진행성의 병을 맞이한 것은 코로나백신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질환에 대해 조사해 보니 유전성 질환이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발현이 된 것으로 나타났고. 대개 증후가 나타나는 시기보다 늦게 발현이 되어서, 발병의 원인이 정말 유전성일까 백신 때문인가 무척 의심스러웠으나 정부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질환을 하루아침에 날벼락처럼 병을 갖게 된 소녀는 가끔은 우울했지만 대체적으로는 밝았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자주 다가갔고 제스처로 의사소통하고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서 보여주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발병한 지 6개월이 훨씬 지나서 나를 만났는데. 온몸에 떨림이 있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성대근육 또한 떨림이 있는지 진동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고 무성 영화의 주인공처럼 말을 했다. 입모양마저 정확하지 않아서 무슨 말인지 거의 대화가 되지 않았다. 발성-목소리가 나는 과정-에 기본은 호흡이다. 충분히 숨을 마시고 적당히 참아 숨을 내쉬면서 입과 혀를 움직여 사람들은 말을 한다. 입으로 나온 기류는 혀가 어딘가에 닿아 자음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서 숨을 마시는 것과 적당히 참아서 성문 아래 압력을 만들어주는 것. 공기를 한 번에 다 쏟 듯이 내쉬지 않고 슬슬 내보내주는 것. 이것이 적절히 조화되어야 말을 편안히 할 수 있다. 모든 과정들이 조화롭게 협동해야 말을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말을 자연스럽게 배운 우리는 이 과정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숨을 자연스럽게 쉬는 것처럼.
나는 이 소녀에게 호흡의 원리를 깨우쳐 주기 위해 시간과 공을 들였다. 소녀는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관심을 가졌다. 나의 목걸이, 나의 핸드폰이 궁금했다. 소녀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손바닥에 글을 써가며 대화를 했다. 이러한 시간들로 나의 치료 계획으로 생각했던 시간과 일정보다 한참 늦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들과 시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소녀만의 친해지는 방법이었고, 병이든, 사람이든, 환경이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저만치 앞서서 소녀와 엄마에게 손짓을 하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계속 떠올렸다. "얼른 오세요. 여기예요, 여기." 하듯. 자리에 주저앉아 오지 못하는 소녀와 보호자를 상상했다. 아! 나만 의욕이 너무 앞섰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와 만나기 전에 소녀는 다른 병원에서 1년 6개월간 입원해 있었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등의 재활치료를 발병 후에 1년 6개월여간 받아왔다. 치료기법으로는 하품-한숨 기법으로 충분히 발성이 진행되었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소녀는 이해 능력도 꽤 좋았기 때문에, 호흡과 발성의 원리를 알고 실천만 해도 진작에 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왜 안 되었을까? 안타깝다기보다 의아했다. 이전 병원에서 무엇을 했는지 보호자에게 여쭈니,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 주고 심리적인 안정을 주었다고 하였다. 정말 좋은 분이었다고 했다.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다. 대개 발병 후에 심리치료하는 과정이 없어서 언어치료사가 심리치료와 같은 대화를 하는 경우도 많기는 하다. 그보다 더, 대화를 하면서 느낀 부분은 어머니가 발성보다 심리적인 지원을 더 중시하는구나... 를 느꼈다. 병을 받아들이고 슬퍼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겠구나. 치료사가 바라볼 때 이 소녀에게 정말 필요한 단계는, 보호자가 바라보는 과정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 저만치 앞서 있었구나. 치료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야 하는데, 슬픔과 애도과정에 아직 멈춰 서 있구나. 문을 열고자 하는 동기부여의 과정까지 몇 걸음 더 디뎌야겠구나. 내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그녀들에게는 애도 과정을 조금 길게 가져야 할 것 같다고 느낀 것 같다, 보호자는. 보호자는 환자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다. 특히 이런 부분들은.
나와 만난 지 약 1개월쯤 지나자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스타카토식의 소리를 내어 말을 하려고 했다. 한숨을 쉬면서 자음이 들어간 말들은 쉽게 소리 내지 못하였고 '하~'하고 시작해야 다른 자음들을 섞어서 발화할 수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엄마', '사랑해요', '감사해요', '하이', '빠이', '안녕히 계세요', '네', '아니요', '언니'를 발화목록에 넣었다. 더불어 소리를 크게 내게 하기 위하여 '택시~'를 말하고, 부르는 상상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말하고 싶은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첨가하도록 하였다. 소녀는 점차적으로 목소리를 냈고, 병실 생활에서 불편한 점들을 말했다. "더럽게 시끄러워요", "귀 아파" 등의 불편함을 토로했고. 밥 먹을 때 다른 분들이 기저귀를 갈아서 "더러워 죽겠어" 등을 표현했다. 입술과 혀의 움직임이 정확하지 않아 겨우 알아들을 때도 있었다.
이렇게 소리를 내는 방법을 머리로 인지하고 몸으로 익히게 되면 병이 진전이 되더라도 몸이 기억할 거라고 믿는다. 소리를 내지 않다가 문장을 말하고 내가 알아들을 정도가 되어서 그동안의 나의 고민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뿌듯해했다. 환자가 나아지는 게 크게 눈에 보이지 않을 때 환자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진다. 치료시간에, 치료실에서 하던 고민을 들고 집으로 퇴근한다. 밤에 자면서까지도 고민스러울 때도 있어서 꿈속에서 환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것은 안 좋은 방식이라 바꿔야 한다. 일은 그 공간에서만 하고 생각도 치료실에 두고 나와야 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점이 보이면 나는 정말 기쁘다. 나의 노력을 스스로 치하하려고 의식한다.
그런데, 환자와 보호자는 내 생각과 다를 때가 있다. 나의 노력에 대해 '운동치료를 열심히 받고 와서인가 봐요'라고 한다. 그동안의 설명으로도 부족했었던가. 조금 허탈한 감정이 인다. 물론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고 근육의 힘이 좋아지면 일정 부분 향상될 수도 있다. 연세 많으신 치료사 선배들은 그런 이유로 환자들에게 치료를 하지 말라고 했었다. 내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떤 물리치료사들은 실어증이든 구음장애든 물리치료를 받으면 다 좋아지니 물리치료만 받으라고 말한 사건도 있었다. 자기 영역에서 자기 것만 충실히 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보호자 또한 나에게 물으면서 '선생님,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에요. 강하게 언어치료를 중단하라는데, 언어치료를 중단할 수가 없네요'라고 말했었다.
내가 설명이 부족했었을까?
언어치료에 대한 효과를 보호자에게 치하받고 싶었던 걸까?
역시나 설명을 제대로 못해서인 것 같다.
그리고 설명에 앞서 적절한 질문을 해야겠다. 경청을 하기 위해서 양질의 질문은 필수이다. 상담의 기본도 양질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현명한 사람은 올바른 답을 하기보다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경청하는 게 좋다. 주의 깊게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 밥프록터, 위대학 확언 중.
다시 말하지만, 양질의 질문은 치료와 상담에 필수적이고 효과적이다. 그래서 여쭙는다. 언어치료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듣는다. 질문을 한 것뿐이지만, 질문 또한 오해받을 수 있으므로. 호의적인 질문인 것을 어필하기 위하여 부드럽게 말한다. 내 설명이 부족했다면 보호자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욕구가 무엇인지 듣는다. 역시나 용감한 질문은 해답을 손에 쥐게 한다. 보호자의 말을 통해서 스스로 치료의 효과를 깨닫게 하고, 방향을 잡도록 한다. 그동안의 경험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간의 언어치료의 효과들에 대해서 보호자가, 환자가,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게 된다. "목소리가 나와서 대화를 조금 더 했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더 연습하려고도 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도 더 생긴 것 같아요. 처음에 왔을 때는 정말 소리도 안 나왔었죠. 그 사이 용 됐어요. 목소리도 더 나오고 말을 더 하려고 하고요. 낯선 사람들 앞이나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위축되는지 조금 말을 안 하려고는 해요."
앞으로의 치료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말을 하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리하는 느낌이다. 말을 하면서 이러한 과정들을 하고 있는 것을 상대도 깨닫고 있으리라 믿는다.
질문하길 잘했다.
구구절절 장황한 설명보다 질문으로 마음을 드러내게 하는 경청의 힘은 놀랍구나.
역시나 경청이 최고다.
역질문 반응
나는 사람들이 조언을 바라며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일 때조차 조언을 별로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질문을 통해 조언을 별로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질문을 통해 그들의 역할 혹은 그들이 이미 내려놓은 결정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조언을 하는 것은 거의 효과가 없다. 현명한 사람은 조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다.
역질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도록 한다.
나는 전문가-내담자 관계에서 신뢰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척도가 질문-대답의 상호작용 횟수라고 본다. 신뢰가 높지 않은 관계나 초기 단계에서는 흔히 질문을 많이 한다. 관계가 발전하고 성장함에 따라 내담자는 더 많은 위험을 수반하는 진술과 관찰을 기꺼이 내놓게 된다. 치료사가 항상 질문에 답하거나 내용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치료의 진전을 촉진할 수 있다. 역질문은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 관계를 진전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DAVID M Luter, 심현섭, 이은주 역.( ).의사소통 장애 상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