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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패왕 Nov 19. 2022

파 프롬 헤븐-사건이 사람을 만든다

파 프롬 헤븐(Far from Heaven)

  

 이 영화는 2002년 토드 헤인즈 감독 작품으로 제 5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인바,  흑인 차별이 여전했던 1950년을 배경으로 코네티컷의 성공한 CEO인 휘터커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줄거리 요약

  흑인 차별이 맹위를 떨치고 있던 1950년대의 미국의 코네티컷주 하트포트 지역.  마그네틱이라는 회사의 CEO로서 성공한 기업인인 프랭크(데니스 퀘이드)를 남편으로 맞아 아내인 캐더린(쥴리안 무어)은 순종적이고 성실한 전업주부로서 화목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모든 것을 다 이룬 프랭크였지만 그럼에도 어떤 결핍을 느꼈는지 홀로 극장에 가는등 방황을 한다그는 우연히 들른 게이바에서 결국 동성애에 빠진다1954영국에서는 컴퓨터 천재인  튜링이 동성애자로 체포되어 1년 동안 화학적 거세를 받던 중 자살을 하였던 실제 사건이 발생할 만큼 동성애는 금기중의 금기 사항이었다결국 프랭크는 자신의 동성 애정행각이 캐더린에 발각되자 재빨리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정신병적 치료에 들어간다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이며 다행이 몇몇을 제외하곤 비밀이 유지되었다남편의 이러한 행동에 충격을 받고 방황하던 캐더린은 자신의 정원사인 흑인 레이먼드(데니스 헤이스버트)와 밀회를 가진다치료에 전념하고 가정을 지키려는 일환으로 프랭크는 아내와 함께 마이애미로 밀월 휴가를 떠난다그런데 그만 밀월 여행은 파탄의 불씨를 뿌리는 여행이 되고만다프랭크가 젊은 남자를 만나 또다시 동성애에 빠지고 만 것이다이에 의지할 곳 없는 캐더린은 더욱 더 레이먼드에 의지한다백인과 흑인의 사랑은 순식간에 퍼져 지역사회는 캐더린과 흑인을 비난한다부부가 함께 시대의 금기에 도전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부부는 파탄을 향해 무한 질주한다.       

이 영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영화는 1950년대  동성애와 흑백간의 사랑이란 미국사회의 금기에 주목하고 있다.. 부유하고 행복하던 중산층 가정이 순식간에 금기의 스캔들에 휘말려 고통받는 과정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을 잔잔한 톤으로 그려내고 있다따라서 이 영화는 동성애에 대한 찬반론흑인차별에 대한 찬반론여기에 가정이 먼저냐개인의 자유가 먼저냐?, 즉 공동체 주의vs 개인주의의 대립을 그린 영화라고 볼 수 있다감독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개인의 자유와 취향을 존중하면서도 휴머니즘에 기반한 공동체 건설을 이상으로 이 영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이 영화는 이러한 시각에 의해 영화를 보아야 할 것이고 이러한 방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시각을 돌려보면이 영화는 중년의 나이까지 사회 순응적인 삶을 살던  두 남녀가 어느 순간 동성애자가 되고금기이던 흑인과 사랑에 빠지는 등 갑자기 체제 역행적 삶을 살게 된다자신들의 자아 동일성 정체성이 급변한 것이다여기서 프랭크와 캐더린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된 것이기에 이렇게 본분에 어긋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일까새로운 정체성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정체성에 관한 많은 이론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들뢰즈의 이론으로 프랭크와 캐더린의 삶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물론 이작품이 들뢰즈가 옹호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띠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이작품은 리얼리즘 형식에 가깝다반드시 포스트 모던형식의 작품에만 들뢰즈 이론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고전적인 작품이라도 사랑의 경게를 사유하는 측면에서 들뢰즈 이론을 적용할 여지는 있다고 보여진다     



3. 프랭크와 캐더린이 사는 세계

 들뢰즈에 의하면 세계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진다인간의 의식을 뺀 우주 전체는 무의식이다이러한 우주의 모든 존재는 영토화와 코드화즉 인간은 코드화동물은 무코드화한다.  캐더린 가족도 영토화와 코드화가 그들 존재의 필수요소이다영토화란 물적 요소와 코드화란 질서의 규칙이 있어야만 존재는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법이다.     

1) 영토화

사물들이 접속해서 하나의 장을 이룰 때 영토라 한다캐더린 가족은  미국의 코네티컷의 하트포드라는 곳에서 자신들의 영토를 이루고 산다남편 프랭크는 마그네틱이라는 회사의  CEO이고  캐더린은 전업주부로서 어린 아이들을 양육한다전형적인 미국 상류층내지 중산층 가정이라 할 수 있다     


2) 코드화

코드화란 영토의 운영원리 법칙언어 규칙 관습을 말한다자본주의 미국을 유지하기 위한 거시적인 관습과 금기규칙이웃인 타인들과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 필요한 규칙과 금기 공중도덕가족간의 지켜야할 규범등의 체계가 바로 코드화이다가족내의 코드화의 예를 들면부부는 바람을 피지 않는다서로에게 폭력 폭언을 행사하지 않는다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  등등즉 코드화는 욕망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념적 수단이다당시 미국의 국가적 코드는 공산주의 반대자유민주주의 옹호 였고 사회적 코드화는 동성애 금지,  흑인차별등이 있다캐더린 가족은 이러한 국가적 사회적 가족적 코드에 맞춰 사는 이상적이고도 모범적인 중산층 가족이다소시민에게 있어서 화목과 행복은 이러한 코드를 준수함으로써 온다.     



프랭크와 캐더린의 주체의 형성

들뢰즈에 의하면 사건에 의해 주체가 형성된다이른바 사건-구조주의 입장을 취한다그런데 사건은 의미와 동일하다도대체 사건이란 무엇인가?     


(1) 사건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원자들 분자들에 있어 어떤 물질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때 수반되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사건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물질에 종속된다즉 물체가 원인이고 사건은 결과이다. (유물론나폴레옹의 머리에 왕관이 놓이는 순간이 나폴레옹 대관식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홈런 사건은 야구장 마다 계속 반복된다대학합격 사건은 매년마다 반복된다이러한 사건에 사물이나 실체의 변화는 없다성질도 변한 것은 없다그런데 홈런과 합격대관식은 어디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가?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은 옷 건물이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사건은 그것이 발생하는 순간에만 존재하고 곧 존재하지 않게 된다.     

2)사건의 특성-잠재성과 부정법

물질은 실존하지만 사건은 존속/내속한다사건들은 현실화되지 않을 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깔려있다즉 홈런을 치다라는 사건은 현실화 되지 않고 있을 때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야구장 어딘가에 존재한다사건이 존속한다는 것은 곧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잠재성이 현실성은 아니지만 실재성이 아닌 것은 아니다홈런 역전 이라는 사실은 역전하지 않은 순간에도 존속한다이정후가 홈런을 쳤다치고 있다내일 칠 것이다이런 사건들은 홈런을 치다라는 순수사건이 이정후에게 현실화 된 것이다     


3) 계열화의미발생

사건이란 물질적 운동의 표면효과이자 동시에 다른 사건들과 연계됨으로써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나폴레옹이 자신의 방안에서 왕관을 써보는 것은 무의미이나 궁전에서 왕관을 써보는 것은 의미를 갖는다이처럼 똑같은 하나의 사건이 어떨 때는 무의미이고 어떨 때는 의미일까그것은 하나의 사건을 고립적으로 생각하느냐 또는 다른 사건들과 계열화해서 생각하느냐의 차이이다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반드시 어떤 사건 계열내에 자리잡음으로써 의미로 화하는 것이고 그것 자체로서 고립되어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반정부인사가 테러를 당한 사건 자체는 무의미이지만 80년대 독재정권 안기부등 다른 사건과 시간 공간에 계열화 하면 의미가 된다이처럼 의미는 바로 자연으로부터 문화로 넘어가는 바로 그 경계선에서 발생한다따라서 의미는 사건과 동일하다. 이처럼 의미라고 하는 것은 기호들의 놀이도 아니고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도 아니고 지시대상 자체도 아니다     

만약 동성애가 허용되던 고대 그리스나 헬레니즘시대와 영화속 프랭크의 외도사건이 계열화 되었다면 개인적인 의미에 그칠 뿐 사회적 파장을 가져오는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캐더린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2022년에 그녀가 흑인과 사랑을 나누었다면즉 지금의 사회코드와 계열화 되었다면 이 역시 개인적 사건으로 묻혔을 것이다이처럼 어느시대 어느 사실과 계열화를 맺느냐가 의미의 분수령이 된다 하겠다     


4) 후기 구조주의사건의 구조론(세계는 사건의 집합이다)

사건이 솟아 오를 때는 이미 무한히 계열화되고 언어화 되고 코드화되고 기호화된 이 장에서 솟아 오르는 것이다이정후가 홈런을 치다는 사건은 이미 수많은 야구행위와 야구규칙 관계자들이 모인 야구의 장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다즉 사건이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수많은 계열들의 장즉 어떤 디아그램(diagramm)안에서 어떤 자리 어떤 위치에서 솟아 오르는 것이다이처럼 사회는 사건의 그물망으로 구조화 되어있다

 전기 구조주의에서 위치 자리는 말 그대로 한 구조 내의 정적인 고정된 위치 자리이다그러나 후기 구조주의에서 자리 위치란 사건으로서자연에서부터 솟아오른 하나의 사건으로 파악된다.  이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항상 이미 형성되어 있는 장안에서 우발적으로 생겨나 그 장 전체의 의미구조를 변화시키게 된다이날 이정후가 싸이클링 히트로 타율 1위로 올라서면 이 효과는 파동이 퍼지듯 전 야구선수의 순위가 변화되고 야구계에 새로운 의미를 가져온다들뢰즈의 사건의 구조론는 전기구조주의와 달리 고정불변의 구조가 아니라 이처럼 우발적으로 변하는 구조를 상정한다     


5) 사건과 주체(개체)의 형성

전통철학은 선험적 주체(데카르트 칸트)를 라캉은 거울 주체를 주장하고구조주의자는 주체의 사망을 주장한다들뢰즈는 어떨까?     

<1>라이프니츠의 주체관

라이프니쯔에 따르면 시이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에도 이미 카이자르라는 모나드 안에는 루비콘 강을 건너다’ 라는 사건이 내속되어 있다 한다이때시이저가 루비콘 강을 건널 때 이 내속되어 있던 사건 술어가 현실화 된 것이다이처럼 빈위(사건)란 한 실체에게 일어나는 일 들 하나하나의 사건을 가르킨다

그런데 라이프니쯔의 빈위는 개체(=주체)로부터 나오지 않는다사건이  개체를 원인으로 일어난다즉 개체가 사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개체에게서 일어 난다이를테면 철수나 영희가 죽은 것이 아니라죽다라는 순수사건이 철수와 영희에게서 현실화 된다는 것이다이정후가 홈런을 친 것이 아니라 홈런을 치다라는 사건이 이정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사건(객체=객관)들이 개체(주체=주관)에 복속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에 가까운 사건들이 먼저 존재하고 이들중 특정한 사건들이 모여서 계열화 됨으로써 하나의 개체가 성립한다사건들의 잠재적인 장이 객관적 선험이고 이 객관적 선험으로부터 개체가 성립하는 것이다

요약하면어떤 한 개체는 그 안에 수많은 빈위들을 가지고 있다이는 내속이며 은유적으로 주름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하나의 개체(주체)는 바로 그에게 내속되어 있는 모든 빈위들/사건들의 집합체이다들뢰즈는 라이프니츠 주체관을 이어받고 있다     


<2> 주름잡힌 주체

이 사건들의 집합을 그 개체의 개념(notion)이라고 한다완전개념이라 할 수 있다시이저의 완전개념은 시이저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빈위들시이저가 실현할 수 있는 수많은 사건들의 집합이다이 완전개념은 공간적으로 병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순서로 계열화 되어 있다그래서 한 개체의 삶이란 이 주름잡혀있던 사건이 펼쳐지는 과정인 것이다요컨대 하나의 개체가 성립하려면 빈위들의 연속체가 정의 되어야 한다그리고 하나의 세계가 성립하려면 이런 연속체들이 일정하게 조직되어야 한다라이프니쯔에게 신을 제거한다면 이 세상은 특이성들이 우발적으로 배열되는 것에 불과하다특이성들의 모나드적 배분을 통해서 우발적인 개체들이 형성되는 것이다요컨대 객관적 선험이 먼저 존재하고 그 특이성들의 일정부분이 하나의 개체를 형성하고 그 특이성들이 특정한 관점을 형성함으로써 그것이 주체가 된다.

요약하면주체가 관점(=사건)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사건)이 주체를 형성한다.     


<3> 프랭크와 캐더린의 주체 형성

프랭크와 캐더린이라는 주체는 프랭크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집합이다둘은 무수한 사건들의 집합체이다태어나다학교에 가다친구와 놀다대학에 가다회사 설립하다결혼하다아이 낳다.... 이루 셀수 없는 사건들이 둘의 인생에 주름잡혀 있다이둘이 새로운 만남과 접속을 할 때 마다 사것이 솟아 오른다그들이 사건을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생길때마다 그들의 정체성을 하나씩 드러낸다이처럼 들뢰즈는 유물론이자 구조주의이다.          



4. 프랭크와 캐더린의 자아 정체성 형성

프랭크와 캐더린은 이성적 품성에 백인 이성애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오고 있었다여기서 일시적인 성향은 정체성이라 할 수 없다정체성은 상당한 기간 똑같이즉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오랫동안 반복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그놈은 거짓말 하지 않는 착한 놈이라는 정체성 부여한다정체성을 나타내는 identity는 동일성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프랭크와 캐더린에게 부여된 이성적 품성에 백인 이성애자라는 정체성(identity)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었을가?     

1) 전통 견해

인간의 정체성은 선천적으로 부여된다는 이성론자들과 후천적으로 학습이나 관습 타인구조에 의해 형성된다는 경험론자들의 견해가 있다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적 자아의 실체성은 신이 보증한다고 주장하여 전자입장에 선다또한 베르그송은 기억이실존주의자들은 자유의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고 주장한다이에 반하여 후천적으로 타자에 의해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견해는마르크스는 계급이레비스트로스는 문화구조가소쉬르는 언어구조가라깡은 상징계가푸코는 미시권력이알튀세르는 호명이데올로기가 정체성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불교는 자아정체성이라는 것은 관계의 그물망의 그려낸 환상일 뿐이라 주장한다     

2) 들뢰즈의 견해

 들뢰즈 의하면 사람의 정체성은 차이를 억압함으로써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그는 주장한다차이의 반복이 동일성(정체성)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남자 없으면 여자 없듯이 차이 없으면 동일성 없다즉 차이 없는 동일성은 없고동일성 없는 차이는 없다그럼 차이와 동일성은 어느 것이 우선일까?     


<1> 세상엔 차이만 존재한다

로마시대의 폴리니우스는 세상에 똑같은 두 장의 나뭇잎은 없다.”고 주장했다그의 주장이 아니라도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물은 없다어제의 나무는 오늘의 나무와 어딘가는 다르다어제의 아침도 오늘의 아침과는 어딘가는 다르다태양도 어제의 태양이 아니다그럼,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과연 똑같을까아니다 체격 피부 성격 근육 모든 점에서 다르다심지어 생물학적으로도 같지 않다. 6개월 정도 지나면 뼈속까지 신체의 거의 모든 세포가 바뀐다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차이밖에 없다세상엔 차이만 존재하지 동일성은 없는 것이다     


<2> 동일성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

그럼에도 우리는 동일성을 인정해야만 한다동일성을 인정할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질서 때문이다세상이 온통 차이뿐이라면 동일한 것은 아무도 없게 되고 그것은  카오스일 뿐이다이름은 동일한 것에 부여하는 명칭이다그런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다면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어제의 내가 살인 강도짓을 했더라도 오늘의 나에게 형사 책임을 부여할 수가 없다이름을 명명한다는 것은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의 이행이다그리하여 비록 어제의 장미와 오늘의 장미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장미라고 부른다이처럼 질서는 존재의 명칭과 개념의 동일성을 전제로 할 때 성립할 수 있다.이처럼 질서유지 필요성이 우리로 하여금 동일성을 창조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3> 반복

그럼 동일성을 만들어내는 메카니즘은 무엇일까그건 반복이다더 정확히는 차이의 반복이다다행히도 차이는 차이에 그치지 않고 반복한다니체에 의하면 영겁회귀한다존재는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돌아오고 또 돌아오고 또 반복한다이것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다차이의 반복이다이러한 영겁회귀에 의한 반복이 우리에게 질서를 부여할 가능성을 준다세상의 모든 존재는 오직 차이만을 보여주지만 사소한 차이를 무시하고 비슷한 것만 남길 때 동일성이 만들어진다사람들은 모두 그 생김새가 다르지만 직립보행머리 두 팔 두 다리라는 공통점만 뽑아내어 사람이라는 동일성을 부여한다아침은 영겁회귀로 돌아온다이처럼 매일 회귀하는 아침은 완전히 동일한 아침은 절대로 없다온도가 다르고밝음의 정도가 다르고 어딘가는 다르다모든 반복에는 차이가 숨어있지만 차이는 말살해 버리고 아침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다시 말해 모든 반복은 차이의 반복인데그 반복되는 것에서 차이를 지워 버릴 때 즉 차이없는 반복으로 만들 때 동일성이 탄생한다따라서 동일성이란 가상이다차이를 지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일 뿐인 것이다     


3) 프랭크와 캐더린의 품성과 성적 정체성 형성

프랭크는 캐더린과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았다영화속 아이들에 견주어 보면 아내인 캐더린과의 교제는 근 10년은 넘었을 것이다둘은 온화하고 따스한 품성을 바탕으로 수십년이나 반복하여 사랑을 쌓아왔다둘의 품성과 사랑의 강도는 매일 매일 차이가 있었지만 이런 일이 수십년이나 무한 반복됨으로써 프랭크와 캐더린은 따스하고 온화한 품성에 이성애자라는 자기동일성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5. 프랭크와 캐더린의 행위-존재의 운동 원리

 프랭크와 캐더린은 결혼을 하고 아들 딸 낳고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산다산다는 말은 만나고 운동한다는 말이다시각을 넓혀서 모든 존재의 사는 원리는 무엇일까?  이러한 만남과 운동을 들뢰즈는 어떻게 설명할까?     

(1)전통철학

 전통철학은 현실 세계 외부에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어 이것이 모든 사물의 변화와 운동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이것은 시대와 사상가에 따라 이데아부동의 원동자보편자1원인로고스절대정신 등으로 불렀다이러한 바탕에서 인간은 욕망과 자유의지가 행동의 근거가 된다이러한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프랭크와 캐더린은 자유의지로 자신들의 삶을 형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2) 들뢰즈의 운동원리

1) 세계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바무의식엔 욕망이 들끓고 분출한다즉 우주는 무의식이고 욕망덩어리이다그런데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이를 충실히 반영한다이는 인간은 욕망의 존재라는 의미이다이처럼 들뢰즈는 인간에게 특권을 주는 것을 거부한다인간이 이성적 존재이며 자유의지가 있어 동물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라는 전통철학의 위계을 거부한다세계 존재들은 이런 우주적 무의식에 따라 움직이는 욕망 기계(machine désirante)일 뿐이라는 것이다

  들뢰즈는 변화의 원인이 사물 자체에 있다는 내재성을 취하며 존재들은 탈주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무생물로 환원하려는 탈주선 타나토스(죽음본능)도 존재한다이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베르그송의 엘랑비탈쇼팬하우어의 생의 의지니체의 권력의지하이젠 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등을 종합 포괄한 것이다이렇게 존재 내부의 탈주선은 정해진 경계를 벗어나려는 욕구를 유발하며 탈영토화탈구조화탈지층을 유도한다이런 운동 변화 탈주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욕망이라고 들뢰즈는 주장한다

 이러한 욕망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들뢰즈는 플라톤프로이트라깡이 주장했던 결핍으로서의 욕망개념과 작별한다욕망은 운동성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적 힘이라 주장한다욕망은 작동을 통해 무언가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기계와 같다고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욕망기계인 것이다이러한 욕망의 운동으로 인해 만남과 접속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만남과 접속욕망기계의 새로운 배치로 인하여 사건이 발생한다     


 2) 영화속 프랭크와 캐더린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닌 욕망의 지배를 받는 존재에 다름아니다즉 욕망기계로 살아가고 있는 기계일 뿐이며 끝없이 탈주 본능에 시달리는 존재이다행복하고 풍족한 생활도 정도껏 누리면 싫증이 나고 탈주하고 싶은 법이다이러한 욕망의 작동 탈주본능에 의거 프랭크는 남자 애인을 만들고 캐더린은 흑인 애인을 만든 것이다     


6. 이들의 연애 사건은 결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프랭크와 캐더린은 결혼한 사이이다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중 남편인 프랭크는 홀로 극장에 갔다가 동성애자 클럽에 들려 접속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캐더린은 자신의 집의 정원사의 아들인 흑인 레이먼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이들의 만남의 성격은 무엇일까     

(1) 이들의 사랑은 자유의지인가결정되어 있는가

 자유의지로 인한 행위는 원인 없는 행위이다즉 인과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행위(비결정론)를 말한다그런데 들뢰즈는 자유의지를 부인하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욕망에 의한 행위로 간주한다따라서 들뢰즈에 의하면 프랭크와 캐더린이 만난 것프랭크가 동성애에 빠지는 것캐더린이 흑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자유의지가 아닌 욕망에 의한 행위로 간주된다욕망 자체에 내재한 현상으로 부터의 탈주본능에 의거한 것으로 해석된다욕망에 의한 선택은 인과관계에 의한 행위로 결정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즉 그들의 삶에 이미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2)결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우연인가필연인가?

그들의 사랑이 자유의지가 아니라 결정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그들의 사랑은 우연인가필연인가우연이면 그들은 상대를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고 필연이라면 반드시 만나야만 했다는 의미이다이를 바꾸어 말하면사랑은 마주침 이전에 결정되어 있는 필연적인 것일까아니면 사랑은 마주침이 일어난 뒤에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사후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일까즉 의미(=진리사랑)가 마주침에 선행하는가아니면 의미는 마주침 뒤에 오는가?     


1). 숙명적 결정론

신학적 결정론이란 신이 창조 시점에 우주에서 앞으로 발생할 모든 것을 결정해 놓았다는 것이다이는 라이프니츠가 말한 예정조화설과 큰 차이는 없다.     

2). 인과관계 결정론

-인과적 결정론은 세상의 모든 일이 선행원인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필연적 결정론과 개연적(확률적결정론이 있다.     

⓵ 필연적 결정론

뉴턴과 아인슈타인 견해이다뉴턴의 경우아인슈타인을 포함하여인과법칙이 있고 원인 사건이 발생하면 결과 사건은 반드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개연적 인과관계를 부인하였다.

이러한 결정론적 전통적 입장은 의미가 마주침에 선행한다고 주장한다의미(진리=사랑)란 미리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필연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연적 결정론(=비결정론확률적 결정론)

양자역학은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확정 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와 슈뢰딩거 고양이 사례처럼 관측 이전에는 양자의 상태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양자 중첩이론에 의거 필연적 결정론은 부인되고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들뢰즈의 우발적 마주침론

 들뢰즈는 에피쿠로스의 우발적 마주침론을 긍정한다고대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계승하여 공허 가운데에서 운동하는 원자로부터 만물이 생긴다고 하였지만원자는 '직선운동에서 빗나간자의성을 갖는다고 본다

 에피크로스에 따르면 세계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무수한 원자들이 평행으로 마치 비처럼 떨어지는데 어느 순간 원자 하나에 최대한으로 작은 기울어짐인 클리나멘(Clinamen)이 발생한다모든 원자들이 평행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평행 궤도를 이탈한 이 작은 원자는 바로 옆에 있는 원자와 우발적으로 마주친다그럼 이제 마주친 두 원자는 결합되어 다른 원자들과 부딪히고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다가 전체 우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계론을 취하면서도 숙명론에 빠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계승하면서도 그의 기계적 필연적 결정론은 부정한다이러한 우발적 마주침론을 수용하면 그야말로 세계는 결정되어 있지 않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리가 되는 셈이다     


4) 프랭크는 극장에 갔다가 동성 남자에게 빠지고 치료를 받는다이후 잠잠하더니 마이애미로 휴가 가서 젊은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또 캐더린은 남편의 방황에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정원사인 흑인 레이먼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들뢰즈에 의하면 이는 우발적 만남으로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인연이었다즉 그 장소에 가지 않았더라면또는 다른 욕망이 더 컸더라면등등의 이유로...이 우발적 만남을 통하여 자신들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그들의 인생이 전개되어 버린 것이다이처럼 우발적 마주침론을 택하면 의미는 마주침 뒤에 오는 것이며사랑은 마주침이 일어난 뒤에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사후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이는 운명 탓이 아니고 욕망으로 인한 접속과 만남의 배치 탓이라 할 수 있다들뢰즈의 철학을 만남과 이별의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7. 프랭크와 캐더린의 탈 영토화탈 코드화

욕망은 한시도 그 자리에서 정체하는 법이 없다끊임없이 흐르며 무엇인가를 생산해 낸다제자리에서 멈추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탈주본능이 있다는 것이다탈주본능은 탈 영토화와 탈 코드화로서 완성된다탈주가 성공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할까?  새로운 접속과 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기존의 정체성을 전복하고 거기서 탈주하려는 순수차이가 발견되어야만 한다     


(1) 프랭크와 캐더린의 새로운 성 정체성 발견

프랭크는 기존의 자신의 이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에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고 이것이 반복됨으로써 동성애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캐더린 역시 흑인에 대한 성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기존의 정체성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되는 것을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1) 동일성의 철학차이의 억압

1) 동일성의 철학이란 차이는 무시하고 동일성을 중요시하는 철학으로서 플라톤부터 헤겔까지의 전통철학을 말한다이들은 인간에게는 이성적 본질이라는 정체성이 있다면서 이를 일생동안 준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동성애와 흑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시의 사회적 금기사항이었다이는 사회적 정체성에 위반한 행위사회의 코드에 대한 배신행위가 분명하다이는 공동체의 도덕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할 사항이다전통철학의 견해인 본질주의에 의하면 인간은  이성적 본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일탈행위는 본분을 망각한 죄악이다따라서 벌을 받고 책임을 져야할 사항이다그들은 사회정체성(=동일성)에 어긋난 행위는 버려야 할 것말살되어야 할것으로 위치시킨다동일성에 어긋나는 차이는 지워야 할 것 말살해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동일성의 철학은 차이에 대해 이처럼 폭력적이다유태인 학살로도 충분히 증명되었다분절선과 층이 강고할수록 그것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행위로 간주된다     


2) 프랭크와 캐더린의 대응

영화속 프랭크는 발각되자 마자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다그리스 헬레니즘시대엔 정상이고 당연하던 것이 195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는 정상이 아닌 비정상병균으로 간주하였다정신병치료의 대상이었고 일부는 영국처럼 형벌의 대상이었다그는 즉시 반성하는 태도를 취하고 병원치료를 다닌다

난 치료를 시작하겠다내 인생과 가정을 망치게 뇌둘 수 없다이게 병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왜냐하면 나자신을 경멸하게 되거든난 기어코 이 병을 이기고야 말겠어

이는 모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기 위한 미봉책일 따름이었다

캐더린도 흑인과의 친분과 연애 과정이 들키자 극구 부인하는 태도를 취한다그녀 역시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가정을 지키려 자신의 양심을 속인다남편이 추궁하자 캐더린은

그런 헛소리 듣게 해서 미안해요맹세코 그 여자가 악랄하게 꾸며낸 거야다시는 그 흑인 볼일이 없어요.”

둘은 동일성의 폭력앞에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2) 들뢰즈의 입장

들뢰즈는 이성 철학의 유럽 백인 남성 중심주의에 반대한다그는 중심을 헤체하는 다원사회를 지지한다그리하여 일체의 경계를 허무는 노마드적인 삶을 살 것을 주문한다

 그에 따르면 이성애를 우위에 두고 동성애를 차별하는 그 두꺼운 장벽을 허무려는 프랭크와흑인 차별의 벽을 뛰어 넘으려는 캐더린은 노마드의 전사로 존중받아야할 사람이다그의 입장에서는 프랭크의 캐더린의  탈영토화와  탈 코드화를 지지할 것이다그렇다면 이들의  성공 조건은 무엇일까?     


<1> 새로운 성정체성의 발견

프랭크는 캐더린과 결혼 후 아이 둘을 낳기까지 이성애자임이 분명했다그의 성 정체성은 이성애자였던 것이다성공한 기업가가 된 어느 날 그는 홀로 리츠극장에 간다거기서 어떤 남자를 주목하게 되고 결국 게이바에서 그와 사귀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프랭크는 자신도 여태 몰랐던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이전의 모습과 다른 자신의 모습,이것이 바로 들뢰즈가 말하는 순수차이이다.     


2) 차이

들뢰즈는 차이를 동일성에 기반한 차이와 순수차이로 구분한다.       

1) 동일성에 기반한 차이

남녀의 차이흑인과 백인의 차이서양과 동양호랑이와 토끼의 차이등은 동일성에 기반한 차이이다남녀의 차이는 사람이라는 동일성의 나무에서 각기 갈라진 것이고인종이라는 동일한 나무에서동물이라는 동일한 나무에서 각각 갈라져 나왔으므로 이는 동일성에 기반한 차이인 것이다이러한 차이는 질서를 유지하는데 여러모로 유용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가끔은 심각한 차별의 문제에 직면한다는 단점이 있다이때 누가 동일자에 가까운가에 따라 위계가 결정된다이성유럽백인남성이야 말로 신과 이데아에 근접한 자기동일적 존재이므로 이들을 중심으로 세계는 돌아간다비이성동양흑인여자는 이데아에서 먼 존재로 열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2) 순수 차이

 순수차이는 동일성에 복속된 차이가 아닌 동일성을 와해시키는 차이를 말한다이를테면 명왕성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완벽하게 이해 할 수도 없을 뿐만아니라 모든 사물의 내용과 성질을 우리가 언어로서 완벽히 개념 정의할 수가 없다그런데 존재는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 외에 그 성질이 무한히 주름잡혀 있다가 어떤 우발적 접속과 만남에 의해 그 신선하고 새로운때로는 괴물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예컨대명왕성이라는 존재를 우리는 불완전하게 나마 태양계의 행성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명왕성과는 전혀 다른 성질주변의 천체들을 밀어내거나 위성으로 만들지 못하는 성질이 발견된다이는 기존의 명왕성의 동일성을 부정하는 차이가 발견된 것이다이로써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다이런 경우 이전의 명왕성과 비교하여 순수차이를 발견했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어느 한 사람의 정체성을 언어로서 표현할 수 없을뿐더러 과학적 경험적 한계 때문에 자신도 미처 자신을 다 알지 못한다영화 속 프랭크 그 자신도 이전까지 자신이 동성애 기질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어느날 영화관에서 어떤 남자를 뒤 쫒아가 그와 만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그동안 주름 잡혀 내재해 있던 자신의 정체성 일부가 드러난 것이다자신도 동성애 기질이 다분하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이다이것이 바로 순수차이이다이처럼 들뢰즈의 존재는 수많은 차이를 가진 잠재성의 존재다양체이다잠재되어 있다는 것은 주름 잡혀 있다는 것이다잠재성은 가능성이며 언제든지 현실로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만들어진 차이가 아니라 만들어내는 차이이며어떤 것을 다르게 만드는 차이가 순수차이다생성적 힘으로서의 차이이고 비교이전의 존재론적 차이이다.  이러한 순수차이가 영겁회귀 반복됨으로써 새로운 자기동일성을 획득하게 된다     


3) 프랭크와 캐더린의 탈 영토화탈 코드화

프랭크는 탈주본능의 욕망에 힘입어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이라는 순수차이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주저 앉지만 결국 탈영토화를 꿈꾼다그는 병원에서 치료 받으며 동성애를 치료 받고자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결국 밀월 여행 갔던 마이애미에서 젊은 남자를 만나 탈영토화를 시도한다그는 캐더린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말한다.

일이 생겼어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그가 나랑 같이 있고 싶단다그게 무슨 감정인지 몰랐어나도 노력했어떨쳐 버리려고당신과 애들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을 줄 알았어.그런데 안돼

결국 프랭크는 자신의 새로운 성 정체성을 끊임없이 반복시켜 캐더린과 이혼하고 탈영토화에 성공함으로써 새로운 성정체성을 얻게 된 것이다

캐더린은 백인들의 등쌀에 떠밀려 하트포트를 떠나는 레이먼드를 기차역에서 배웅한다레이먼드가 찾아다 준 그녀의 보라색 스카프를 걸치고 아무말이 없이 그를 배웅한다.  지역사회와 백인들의 등쌀에 캐더린은 잠시 굴복한 듯 보였지만 탈 영토화를 암시하는 듯한 이별 장면으로 영화를 맺는다이별 아닌 이별의 역설로서 영화를 마무리 한다     



6. 맺으며

부유하고 평화롭던 중산층 부부는 각각이 자신의 기존의 정체성에 반하는 새로운 차이를 발견함으로써 파탄의 위기에 직면한다욕망의 끊임없는 흐름과 탈주 본능강도의 차이의 영겁회귀의 세계에서 아무리 유복하고 행복한 환경이라도  완벽하고 영원하게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을 프랭크 부부를 통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탈영토화와 탈 코드화의 경계에 섰다이러한 탈 영토화와 탈 코드화가 바람직한 것인가의 문제는 각자의 관점에서 다르게 보일 것이다이는 함부로 섣부르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영원한 숙제로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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