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위로를 보낸 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외로워. 밤이 되면 혼자인 게 느껴질 때마다 더 잠이 안 와. 그러다 새벽녘에 잠들면 아침이 되어 허겁지겁 일어나서 정신없이 회사에 가. 그게 요즘의 일상이야."
혼자인 게 외로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남의 말 같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의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내가 그의 마음까지 온전히 알 수는 없으니 그럴 것이다 추측해 본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는 그가 안쓰러워 매일 아침 출근길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눴다.
가을이 되면 한 번씩 찾아오는 우울함이 있다. 뜨겁던 공기가 아침저녁으로 차가워지며 내 피부에 와닿을 때, 이렇게 한 해가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어떻게 또 살아가야 하는 불안과 부담이 찾아오면 마음속 깊은 우울을 만난다. 가을부터 취직을 하게 되어 적응하느라 바빴던 나는 이번 가을 그 우울을 느낄 시간을 놓쳤다. 그래서인지 깊은 밤이 되면 한 번씩 우울함이 밀려왔다.
그에게 말했다.
"나 요즘 우울해."
"너는 만날 우울하지."
어떤 위로가 섞인 따뜻한 말을 바라며 했던 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비난 섞인 그 음성이 귓가에 남는다. 내가 그랬던가 돌아본다. '뭐? 만날 우울해? 사람이 살다 보면 우울한 날도 기분 좋은 날도 있는 거지. 넌 왜 꼭 그렇게 표현을 하니?'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를 노려본다.
"나한테 우울하다고, 외롭다고 할 때 나는 너한테 전화도 걸어주고 따뜻한 말도 건네려 애썼는데,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은 다 삼켜버리니? 네가 예전에 소통에 대해서는 전문가라면서 네가 강의할 때 썼던 이미지 보여주면서 이야기했던 게 난 아직도 생생한데, 몇 년 새 넌 많이 변했구나."
말이 길어지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내 마음이 아파질 것 같아 입을 닫는다. 나와 오래 알고 지내고 깊어지면 내가 내 속의 이야기를 잘 안 한다는 걸 친구들도 느낀다. 말이 많고 거침없이 다 표현하는 것 같은데 생각과 다른 모습에 낯설어한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지,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받는 건 좋아하지만, 친구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는 이기심을 봤다. 사람에게 받는 위로, 아니 그들이 하는 위로는 그저 자신에게 하는 말일뿐이다. 나 또한 그가 외롭다고 했을 때 그를 위한 것 같았지만 사실 날 위로했던 것이다. 내 안의 외로움과 불안함을 달래려 그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나에게 했다.
그래도 그가 칭찬처럼 나에게 말했다.
"너의 우울함이 아이들 양육할 때는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넌 아이들만큼은 네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잘 키우고 있어."
매일 그가 날 못 보는 게 다행이다. 사람의 모든 감정이 어떻게 전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오늘 엄마가 속상한 일이 있었어. 위로해 줄래?"
"엄마 오늘은 어떤 일 때문에 화가 났어. 엄마 오늘은 조금 우울해. 오늘은 힘든 날이야 엄마 좀 따뜻하게 안아줘."
아이들은 부족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위로하고 안아주면서 자란다. 살아가면서 어찌 매일 기쁠 수 있겠는가. 우울함도 지나가고, 외로운 시간도 지나가고, 고난의 시간도 지나가면 또 즐거운 시간도 오고, 재밌는 날도 오는 거겠지. 며칠 전 그의 말로 가슴에 벽돌 하나가 놓였었는데, 글이 정이 되어 벽돌을 콕콕 깨부순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크기가 작아지고 숨구멍이 하나 생긴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