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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엄마 Mar 28. 2024

네가 내 오빠였으면

내 딸은 좋겠다. 내 아들이 오빠라서.


"엄마, 오늘 저녁은 뭐예요?"


가끔은 지겹다고 느껴지는 그 질문이 엄마에게 사랑을 확인할 시간이라 생각하면 밀려오는 짜증이 줄어들기도 한다. 매일 뭘 먹어야 하는가의 숙제 앞에 지겨움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난 13년 차 엄마이다. 

아이의 나이만큼 밥을 한 횟수도 늘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아니 점점 더 밥 하기가 싫다. 밥 하는데 들어가는 시간 그리고 이후 치워야 하는 일들이 버겁다. 


며칠 전 엄마에게 말했다. 

"아니, 엄마가 되면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의 반복된 삶인데 이게 뭐 좋은 거라고 그렇게 재촉을 했어?"  엄마의 대답은 뻔하다.

"그래서 이렇게 이쁜 아이들 낳았잖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내 눈동자에 담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내 피로회복제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예요? 질문 앞에 선다. 주말에 준비해 놓은 남은 반찬을 읊는다. 아들은 그거 먹으면 되겠네라고 말하지만 딸은 단호하다. 

"싫어!"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다 싫다는 아이의 마음에 "고기"라는 한 단어만 들려주면 쉽게 끝날 일이지만, 오늘은 나도 버텨본다. 

"짜장밥, 열무비빔밥, 콩나물비빔밥, 계란볶음밥, 밥에 김치."

당연히 아이의 대답은 "그럼 나 밥 안 먹어."


집에 도착하니 딸의 입이 저 멀리까지 나와 있다. 아들은 짜장을 데우고 계란프라이를 얹어 먹겠다면서 프라이팬을 꺼내온다. 딸은 안 되겠는지 떡국을 끓여 달라고 말한다.


아들이 말한다.

"엄마 어떻게 하죠? 떡국을 끓여 줄까요?" 

"넌? 떡국을 끓여 줘야 된다고 생각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에게 비비고 사골곰탕 데워 떡국을 끓여주자고 말하자 바로 준비를 한다.


이미 데워진 짜장이 식어질까 봐 너 먼저 밥 먹으라고 말해도 괜찮아요라며 엄마를 거드는 아들을 보면서 힘껏 안아준다. 떡을 물에 불리고 작은 냄비에 인스턴트 사골국을 데우면서 계란을 2개 가져와 푼다. 식탁에 앉아 엄마와 오빠를 바라보는 딸의 얼굴에는 어색함이 묻어있다. 아마 아이도 생각하고 있을 테지. 괜히 고집을 부렸나 싶기도 했을 테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서 주는 대로 먹어!라고 했으면 아이도 화를 내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집안 분위기를 상상해 본다. 그건 정말 엄마가 만든 지옥이다. 화내지 않아서 다행, 아이가 기다려 줘서 다행, 아들이 동생을 위해 노력해 줘서 감사, 순간의 선택이 집안의 평온함을 가져온다.


오빠가 밥을 준비해 놓고도 못 먹는 걸 봐서 그런지 오늘은 오빠에게 짜증도 부리지 않는다. 나 같으면 냄비째로 줬을 텐데 아들은 동생을 위해 국그릇을 꺼내 예쁘게 담아준다. 평소 파와 마늘이 들어가면 질색을 하는 딸이 말없이 떡국을 먹는다. 조금 마음이 풀리니 딸의 표정이 맑아진다.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아들이 내 오빠였으면 참 좋겠다. 나도 이런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하면서 아들에게 생길 여자친구에게는 더 다정할 것을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진다.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이 아닌 서로 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이쁜 마음의 여자친구를 만나면 좋겠다는 욕심도 내본다.


자기 전 딸아이가 쓴 일기를 본다. 

오빠가 떡국을 끓여줬는데 싱거웠다. 다음에는 엄마가 끓여주면 좋겠다란 내용을 보면서 있을 때는 못 느낀 오빠의 사랑이 당연하지 않음을 아는 순간이 왔을 때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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