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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엄마 Apr 01. 2024

엄마 갱년기야?

내가 갱년기라니!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지고, 사는 게 재미가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나는 겨울이 되면 곰이 동면을 취하듯 추위를 피해 움츠리고 있다가 봄이 오는 소식이 들리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한다니 나도 함께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봄이라고 얇게 입고 나가서 꽃샘추위에 덜덜 떤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봄이 온다고 하면 겨울옷을 집어던지고 봄옷을 입고 나갔다. 가벼워진 옷차림만큼 마음도 가벼워졌다. 이 지역 저 지역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는 게 즐거웠다.


아이를 키우면서 친구들과 연락도 거의 끊었고, 연락처에 저장된 친구는 있지만 섣불리 연락하기 쉽지 않다. 가까웠던 시간보다 이제 엄마로 살며 멀어진 시간이 더 긴 탓일지 모른다. 아니 더 솔직해지자면 지금 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피하는 게 맞다. '겨우' 이렇게 밖에 못 사는 내가 한심하고 부끄럽다. 


구구절절 불쌍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언니들 말에 의하면 누구나 이런 시기는 온단다. 내가 뭐 하고 살았나 싶고 앞으로 잘 살 마음의 여유도 없는 시기, 내가 지금 그렇다. 마흔을 앞두고 세게 이런 고뇌가 온 적 있었는데 친구와 술과 어린 아기들 돌보는 일상으로 어떻게 버텼다. 어렸던 아기들이 커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까? 그때 느꼈던 그 감정들이 다시 날 휘감는다. 


그때 힘들었던 부분에서 크게 나아진 건 없고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오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 인생에 봄날이 오긴 오는 걸까? 이렇게 살아서 경제적 자립이 되고 내가 원하는 것들, 원하는 것을 고민해 봐도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들이지만 그것들을 하고 늙어 죽을 수는 있는 걸까? 늙어도 계속 이 상태라면, 사십 대인 지금도 내 온몸은 아프고 속 썩이는데 점점 더 아파지는 몸으로 살 수 있을까? 끝없는 안 좋은 생각은 더 극으로 나를 데려가고 마음을 무너지게 한다.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점점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나는 그냥 누워만 있고 싶은데 밥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화장실에 곰팡이는 왜 이렇게 자꾸 생기는 건지. 아이들이 이렇게 잘 커서 나를 많이 돕고 제 역할을 잘 해내는 데도 내 역할은 늘 있다. 


어제는 이남매를 데리고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 요즘 더 짜증이 많아진 엄마인 게 미안해서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요즘 계속 기분이 안 좋아. 우울하기도 하고, 과거에 잘 못 살아온 게 자꾸 기억나기도 하고, 너희한테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하고 그래서 슬프고, 언제 삶이 나아질까 생각하면 막막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더 여유 없이 널 대하는 건 아닐까 미안하기도 해. 그런 생각을 하면 또 슬프고 말이야." 


조용히 듣던 딸이 안쓰런 표정을 하고는 날 보고 말한다.


"엄마 갱년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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