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간호사 May 19. 2023

힘들었죠?

네. 많이 울었어요.

소화기내과, 혈액종양내과, 안과, 부인과, 비뇨의학과, 이비인후과. 

평소 내가 정기적으로 다니는 진료과이다. 

그 외에도 대상포진이나 폐렴등으로 입원하면 피부과, 감염내과까지 진료를 보니 작고 소중한 내 연차는 언제나 모자란다.


며칠 전부터 심해지는 허리 통증으로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아주 가끔 가는 병원이지만 원장님은 날 기억하고 계셨다.

"오늘은 어디 아파서 왔을까요?"

"허리 통증이 심해서요. (....) OO 소염진통제는 주지 마세요. ;;"

"지난번에도 안 줬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예전 특정 소염진통제를 먹고 출혈이 있었기에 원장님은 기록해 두었다가 처방하지 않으셨다.


진료와 관련된 이야기를 거의 마무리할 때쯤, 원장님께선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요즘 드라마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와 속상했죠?"

순간 나는 멈춰버렸다. 그리고 눈물이 차올랐다. 

목이 메었다. 얼굴이 빨개졌다. 울컥거렸다.

마스크 밖으로 슬픔과 답답함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네. 많이 울었어요."

"그럴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실이 아닌데... 환자들이 속상했을 것 같아서 좀 그렇더라고요. 아닌데. 그렇죠?" 

"화도 나고, 오해나 억울한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기도 하는데.. 어쨋든 좀 속상했어요."

"그래요. 난 아니라고 생각해요. (...) 당분간 물리치료 받고 꾸준히 스트레칭도 하고 해봅시다. 약은 처방 안 할게요."




드라마는 시청률도 높고 조만간 끝나겠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오해와 불편한 시선, 모욕적인 말들은 병이 완치될 때까지 해명해야 하고, 때론 피하기도 해야한다. 사실을 설명하고, 아니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처럼 든든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감당하기 어려운 잔인한 말과 시선의 무게도 견딜 만하다.


꼭, 반드시 완치하고 말 테다.

지난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부터, 내가 더 아팠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날 선 말들까지...

다 이겨내고, 견디고, 버티고 버텨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도 낮과 밤. 모든 순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나의 동료들, 의료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작가의 이전글 '못된 병'이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