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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간호사 May 28. 2023

잘 가. 만두야.

야심 찬 만두 먹기 도전은 실패

오랜만에 화장실에서 네발로 기어 나왔다. 한동안 잠잠했었는데...

아쉽게도 며칠 동안의 평화로움은 어젯밤 나와 이별했다.


얼마 전 마트에 갔다 만두가 너무 먹고 싶어 냉동 만두를 사고 왔다.

컨디션이 견딜 만하길래 약간의 도전을 해 볼 욕심에 야심 차게 만두를 샀다.

그냥, 큰바람도 아니었고

단지, 만둣국이 먹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기분 좋게 만두 몇 개를 넣고 요즘 계란도 먹을 수 있어서 계란까지 풀어 넣어

맛있게 먹었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은 점점 심해져 온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다.

화장실 앞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할 기운도 없었다.

뱃속에서 바글바글 물 끓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려왔다.


화장실에서 크론씨와의 전투가 시작됐다.

입술은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심해지는 통증에 눈물이 쏟아졌다.

살려줄 사람도 없는데 살려달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눈물범벅을 하고 나서야 화장실에서 기어 나올 수 있었다.

기가 막힌 고통. 누가 내장을 다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얼굴에 범벅이 된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고,

식탁 위 커다란 통에 담긴 진통제 두 알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슬프게, 아프게, 억울하게, 외롭게, 불안하게, 기운 없는 밤을 보낸 후 아침을 맞이했다. 

살았다. 버텼다. 이번에도 잘 견뎠다.

응급실에 실려 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감사한 아침이었다.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 냉장고 앞으로 갔다.

하얀 종이에 빨간 글씨로 커다랗게 적힌, <먹지 못하는 음식 리스트>에 '만두' 녀석을 올려놨다.


우리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잘 가. 만두야.

미안해. 만두야.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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