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통증으로 잠에서 자꾸 깬다. 관절 염증의 페스티벌 기간인지 요즘 강제 새벽 기상을 한다. 주사도 맞아봤지만 일주일을 채 견디지 못했다.
생업을 위해 진통제를 처방받으러 가는 길.
쪼개고, 쪼개고, 아끼고, 아꼈지만 연가는 늘 모자란다. 소화기내과, 혈액종양내과, 안과, 이비인후과, 부인과, 마취통증의학과. 내가 가야 하는 6개의 진료과이다. 한두 달에 한 번 가야 하는 과도 있고, 1년에 두 번 진료 봐야 하는 과도 있다. 몇 개의 과는 작은 병원으로 옮겨 시간 관리하기 수월해졌지만 대학병원에서 진료 봐야 할 때면 평일 하루를 통으로 날려버리기 일쑤다. 이른 아침 혈액 검사를 하고 난 뒤, 약 2시간 정도 병원 내 커피숍이나 외래 근처 의자에 앉아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다시 진료를 봐야 한다. 오래전부터 반복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지지도 않고, 한결같이 지루하고 지치다. 연가를 아껴보려 한 번은 세 개의 과를 하루에 진료 본 적 있었는데, 기다리다 지쳐 기다란 외래 의자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주변의 시선도 전혀 상관없을 정도의 피곤함에 주저 없이 항복했다. 남의 시선보다 나의 힘듦이 더 견딜 수 없어 에라 모르겠다 누웠다. '다른 이들도 분명 나처럼 지쳐있겠지.' 나를 다독이며 침대를 대신한 의자에 나를 맡겼다.
다행히 소화기내과 교수님께서 얼마 전 개원해 진료 볼 때 대기 시간이 짧아졌고, 토요일에도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소중한 내 연가를 진료가 아닌 다른 형태의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소소한 기쁨을 그려봤다. 예를 들어 혼자 차를 마신다거나 도서관에 간다거나 때론 집에서 쉬거나 하는 것과 같은 상상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비슷할 거로 생각한다. 병원에 가면 하루 종일이다. 때론 반나절 정도 걸리기도 하지만 병원에 다녀오면 오후에는 숟가락 들 힘도 없을 정도로 기운이 다 빠져 침대에 누워있게 된다. 그러니 반나절이라 하더라도 내 하루는 사라지는 게 맞다.
연말이 되면 다음 해에 사용할 다이어리를 하나 구입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적는 목표는 '입원하지 않기'이다. 연가는 외래 진료받으며 사용하고, 입원하면 병가마저 다 사용해 결국엔 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 입원하지 않고, 덜 아픈 게 첫 번째 목표 일 수밖에 없다. 평소 복통도 나에게 과분한데 요즘은 관절통이 나를 지치게 한다. 연가는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조용히 연기처럼 사라지고, 오롯이 혼자만 누리고 싶은 시간은 커피숍도 아닌 도서관도 아닌, 결국, 병원 의자에서 맞이하게 된다.
치료제는 언제쯤 나오려나...
병원 밖에서 연가 하루 실컷 써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