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 겁쟁이의 북페어 도전기
쫄지 마! 고간호사
<병실로 퇴근합니다> 출간 후, 한 번쯤 북페어에 도전하고 싶었다. 가끔 "작가님, 이번 페어에 셀러로 나가세요?" 질문을 받을 때면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니요."라고 답했다.
크론병의 증상인 설사와 복통을 북페어에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행사장에서 긴 시간 버틸만한 체력이 아니라는 객관적 판단이 용기를 단번에 꺾었다. 투병 전에는 오히려 '대담하다', '천하무적이냐', '무모하지 않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환자가 되고 간혹 하루에 열 차례 이상 화장실을 다녀오는 상황에 밖을 나가기가 두려워 결국 불편한 상황은 미리 피하는 겁쟁이가 되었다. 친구들, 지인과의 약속에도 여러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빠져나갔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강의나 밖에서 하는 활동, 여행은 꿈꾸지 않았다. 크론병 환자들이 모두 이렇지는 않다. 바깥 활동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환자들도 있다. 나는 그냥 이렇게 지냈다는 충분히 개인적인 과거를 이야기할 뿐.
아무튼, 난 후천적 겁쟁이와 집순이를 자처하며 외부 활동을 줄였다. 그러니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행사가 진행되는 북페어는(준비시간까지 생각한다면 거의 10시간이지 않을까?) 넘지 못할 산이라 생각했다. 딱, K 출판사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만.
"북페어 참가하고 싶은데, 솔직히 7시간 앉아있는 것도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고 행사 중에 아플까 봐 걱정돼요.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갈지.... 이러다 평생 셀러로 참가 못 할 것 같기도 해요."
"뭘 그렇게 고민해요. 나랑 같이 나가요. 같이 할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작가님만 괜찮으면 우리 같이 나가봐요. 서로 도와주면 시간도 나눠서 쉴 수 있고, 작가님도 화장실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니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요?"
"진짜요? 같이 나가도 괜찮으시겠어요? 저야 너무 감사하죠."
"일단 신청부터 해봅시다. 같이 하면 저도 좋습니다."
하긴, 신청서를 냈다고 다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김칫국을 사발째로 마셨음이 분명하다. 제주에서 열리는 북페어는 전국에서 약 200팀이 참가하고 참가비가 무료다. 예상했겠지만 경쟁률이 상당하다 들었다. 출판사 사장님과 내가 매우 가깝게 지내는 북카페 사장님과도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어 북페어 참가 얘기가 나왔고, 사장님도 함께할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을 만들었다.
며칠 전 북페어 신청서를 작성했고, 2월 28일 많은 경쟁자 사이에서 참가 확정 메일을 받았다.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 불편함, 통증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하는 이들과 서로 나누어 걱정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어려움을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어 봐야 아무 소용 없었다. 어떻게든 꺼내놓고 함께 고민해 본다면 불안의 무게는 나를 짓누르는 돌덩이가 아닌 '후~'하면 날아갈 것 같은 먼지처럼 가벼워진다.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었던 후천적 겁쟁이, 고간호사. 이제 작지만 단단한 용기를 가지고 세상 앞으로 빼꼼히 나를 내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