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블비의 유혹에 넘어갔다. 유혹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갔다. 집순이를 세상으로 던져놓기까지 그의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처음에는 방 안에서 거실로, 집 안에서 문밖으로, 집 주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제주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우리는 연습 끝에 세상과 마주했다.
바깥세상을 두려워했던 건 예고 없이 찾아오는 복통과 설사, 관절통 때문이었다. 도전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여러 차례 가는 나로서는 집 밖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극도의 스트레스였고, 주변에 반드시 화장실이 있어야만 발걸음을 옮겼다. 시도와 실패를 무한 반복한 결과, 차로 10분 거리의 마트나 도서관에 가는 일이 수월해졌고, 이제는 30분, 1시간 거리에 있는 약속 장소나 카페에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따 또 화장실 가고 싶을 것 같은데...."
"괜찮아. 100번 가도 괜찮아. 가는 길에 화장실도 있고, 잠깐 쉬다가 가도 돼."
"나도 화장실 위치 알아보기는 했는데.... 불편하면 미리 얘기할게."
"가다가 돌아와도 괜찮으니까 컨디션 조금 떨어진다 싶으면 얘기해."
"응, 알겠어."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 전 이야기를 나눈다. 그날의 컨디션 확인과 화장실 위치를 알고 나면 부담감이 줄어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복통을 덜 느끼고,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서귀포에서 새벽 산책
인간에게 아주 기본적인 먹고 싸는 일. 이 두 가지는 평생(치료제가 나온다면 달라지겠지만) 풀어야 할 매우 어려운 숙제다. 그래도 다행인 건 끊임없는 연습으로 이제 타지방까지 갈 수 있는 능력이 갖춰졌다. 명쾌하게 해결된 문제도 아니고, 삐걱거리고, 때론 웃픈 일도 생기지만 시도하고 때론 성공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소소한 행복을 쌓고 있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제주를 떠나 여행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가까운 곳으로 바람 쐬러 간다. 가까운 미래에 해외로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범블비의 유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새로운 곳을 가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조금씩 시도하는 것도 일정의 하나다. 누군가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으나 나에게는 크나큰 도전인 한 달에 한 번 가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