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데 그냥 쉬지." 자주 듣는 이야기다. 이 말을 듣고 나면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돈을 벌어야 먹고 살 텐데...' vs '쉬는 게 맞을지 몰라. 그냥 쉴까?'
교대 근무를 포기한 지 오래다. 많은 이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겠지만 낮에 깨어있고 밤에 잠을 자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크론병 환자인 나에게도 해당한다. 교대 근무를 하면 상근직보다 급여가 더 많고, 환자를 더 가까이 간호할 수 있다. 그러나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테니 포기하는 편이 살기 위한 일이었다. 상근직으로 근무한 지 몇 해가 지났다. 여전히 나는 나를 먹여 살리는 중이다. 주변에선 부모님도 있고, 프로병수발러인 범블비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냐며 일을 말린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내가 먹여 살리고 싶다. 다행히 지금 직장에서는 화장실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급여가 제때 나오며, 직원들이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편이다. 단, 기간제 근로자라 몇 개월 근무하고, 다시 구직활동을 해야 하지만 몇 개월이라도 내 손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환자인 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와 간호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 내고 있다는 감사함, 자식으로서 그대들의 자녀가 덜 아파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 그리고 보호자인 그 사람에게는 아직 잘 살아 있다는 확인.
건강보험 납부 내역을 보니 10곳 넘는 이직의 기록이 있었다. 지금 직장에 입사하기까지 부담스러운 시선과 쓰디쓴 말, 오해의 상황,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눈이 발목 위까지 내렸던 날, 다음날도 눈이 많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고 추운 곳에 오래 있으면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기에 다음날 연차를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재를 받고자 했던 나를 보며 춥다고, 눈이 와서는 연차를 쓸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내 작고 소중한 연차는 반려되었다. 연차는 근로자가 원하면 당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인데 반려시키는 행동과 눈이 온다고, 춥다는 이유로 쉴 수 없다는 그분의 말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억울함으로 남아있다. 쉬지 못하고 출근했던 그날, 나의 마음도 꽁꽁 얼어버렸다. 세상은 넓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는 생각은 더욱더 확고해졌다. 눈이 오거나 몹시 추운 날이면 그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날 이후 추운 날엔 더 따뜻하게 머물려 노력하는 내가 되었다.
삶에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가슴 깊이 배울 수 있었던 그곳을 퇴사하고 여전히 나는 돈을 벌고 있다.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한동안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고, 외출을 두려워하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환자이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른 아침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씩씩하게 출근한 직장인이다. 늘 그렇듯, 무사히 눈 뜨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쌀쌀한 출근길, 추워하는 나를 위해 따뜻한 차 한 잔 건네주는 동료들과 나의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