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페어 둘째 날 아침. 전날 하루 종일 행사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그것도 아주 가뿐하게. 쌩쌩한 컨디션에 더더욱 놀랐다. 나를 과소평가했었나?! 이런 능력이 있었다니.
이튿날이라 준비할 게 많지 않았고, 세팅이 되어있던 상태였기에 넉넉히 1시간 전에만 행사장에 도착해도 됐었다. 그러나 그냥 빨리 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팀원들은 일이 있어 시간 맞춰 간다고 했고, 나는 먼저 출발했다. 가는 내내 노래를 흥얼거렸다. 세상에나.
사람을 두려워했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에 기가 막혔다. 사람이 그리웠나?
가족이 간호사라 했던 분들, 제자가 간호사를 꿈꾼다는 선생님, 같은 병을 가진 환자, 낯익은 유튜버, 책을 이미 읽었다는 독자, 일부러 책을 구매하러 제주 행사장에 오셨다는 분, 지나가며 내 책을 구입해 읽었다는 독자, SNS에서 책을 봤다는 분, 책을 궁금해하시는 분들까지.... 지나치지 않고, 잠시라도 머물며 관심을 보여줬던 관람객들이 감사했던 자리였기 때문일까. 행사 내내 즐거워, 지치고 아픈 걸 잊어버렸다.
이틀간의 북페어가 끝났다. 글을 쓰는 지금은 행사가 끝난 늦은 밤이다. 출근을 위해 자야겠지만 오늘의 감사함이 사라질까 봐 글을 쓰고 있다. 혼자서는 절대 이루지 못할 일이었다. 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었던 공공도서관, 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권유해 주었던 K 군, 수강생들 가르치느라 애쓴 O 디자이너, J 작가님, 책을 인쇄해 주었던 금비피앤피, 펀딩에 동참해 준 많은 손길, 힘차게 응원해 주던 환자들, 견딜 수 있게 치료해 주는 의료진들, 책을 입고하고 판매에 힘써주시는 독립 책방과 북 카페 50여 곳, 북토크를 진행해 주셨던 책방지기들, 작은 도서관, 북페어 관계자들, 그리고 친구들, 가족, 선후배, 지인들, 그리고 범블비.
북페어가 끝나고 고마움이 더욱더 커졌다. 환자를 위해 더 글을 쓰고 싶고 내 사람들을 위해 무엇으로든 보답하고 싶다(환자인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것도).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겠으나 채워가며 나아가려 한다. 쉽지 않은 길이다. 일하며, 글 쓰며, 치료받는 일은 쉽지 않다. 또 어떤 날엔 병실이나, 응급실에 누워있을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병원에 누워있는 모습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거나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그 순간이 온다 해도 이젠 두렵지 않다.
나는 그대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아프더라도 조금 덜 아프고, 고통의 시간은 기억조차 나지 않게빠르게 지나가길 바란다. 이제 이 밤을 보내면 다시 간호사의 모습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