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생활이 지속되면서 다양한 방법을 터득한 탓에, 이제는 조금 살만합니다. 경제적인 부유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버틸만하다'에 가깝습니다. 얼굴은 예전보다 덜 창백하고,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매일 먹던 지사제도 가끔 먹고요. 먹고 싶은 음식을 참는 인내심도 커졌고,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결단력도 생겼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어쩌다 친구 앞에서 약을 먹을 때 "맞다. 너 환자였지. 자꾸 잊어버린다." 이런 말을 들으면 짜릿한 승리감을 느낍니다. 자주 가는 거꾸로 헤어 원장님과 실장님이 예전보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이야기합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습니다. 빈혈로 혈액종양내과에서 며칠에 한 번씩 주사를 맞아야 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빈혈도 호전되어 정기적인 검사만 받고, 병원 외래진료도 두석 달에 한 번씩 가게 되었습니다. 이젠 조금 먼 곳으로 놀러 가고, 나름 맛있는 간식도 먹습니다. 그러니 대체로 요즘 살만하다 하겠습니다.
한창 입원하고 아플 땐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른 퇴원해 일상생활로 돌아가기만 바랐었죠. 그 지독했던 시간을 견디고 나니 이제는 숨통이 트였는지 뭐라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몸뚱이의 세포들이 살만한가 봐요. 최근 들어 사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습니다. 종종 외출도 하고, 모임도 하거든요. 놀랍지 않나요. 최근 5년 사이의 변화입니다. 통증이 줄었냐고요? 예전에 비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라진 건 아닙니다. 통증이 없는 날은 없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프니까요. 그래도 대체로 괜찮습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응급실 가는 횟수, 입원 횟수가 현저히 줄었으니까요. 이 정도의 고통은 충분히 감내할 만합니다.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걷는 것과 코와 입으로 숨을 쉬며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통증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더욱더 좋겠지만. 뭐,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오늘 대체로 괜찮았던 하루였나요? 나의 의지로 걸으며,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하늘도 한 번 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별일 없던 무탈한 하루였나요? 매일 해가 비치는 맑은 날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대들이 편안하고 무사한 하루를 보냈길 바랍니다. 대체로 평안하고, 어디서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