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간호사 Jul 15. 2024

대체로 맑음

"오늘 고기압의 영향으로 대부분 지역의 하늘이 쾌청하게 맑았습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면서 다소 더웠는데, 내일도 맑은 날씨가 이어지며 낮 기온이 오늘보다 조금 더 오르겠습니다. …… 내일도 전국이 고기압의 영향으로 대체로 맑겠습니다."



TV에서 일기 예보를 한다. 내일도 대체로 맑음. 

'맑음'이란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면 동글동글 부드럽고, 밝아지는 기분이다. '맑음'이라 말해주는 캐스터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몸도 대체로 맑음이었으면.' 간절히 바란다면 그렇게 될까? 오랜 투병 기간 어쩜 이리도 컨디션이 오르락내리락하는지 배가 너무 아프다가도 조금 괜찮아지고, 때론 갑작스레 입원하고 퇴원하고 반복하는 게 번거롭고 억울했다. 요즘은 증상이 덜한 *관해기이지만 그렇다고 멀쩡히 안 아픈 날은 없다. 


환자임을 인정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추측하건대 환자임을 인정하기 싫어 악을 쓴 듯하다. 게다가 멋대로 날뛰는 통증 놈의 기분을 알 수 없었다. 난 상당히 침착하고, 담담할 줄 알았다. 그래도 간호사니까!? 이런 어림없는 생각을 했다니. 단지, 과정을 조금 미리 알뿐이었는데. 


얼마 전, 차를 타고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지나왔다. 한참을 달려 빠져나온 눈앞에는 파랗고 맑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순간 날씨와 비슷한 녀석이 내 안에 있는 듯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지나지만 언젠가는 뿌연 안개는 걷힐 테고, 새파란 하늘이 기다리고 있겠지.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먹구름이 드리워질 때면 그냥 그렇게. 늘 구름 한 점 없는 쨍한 날만 기대할 수 없듯 몸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통증들은 예보 없이 우당탕 들이닥치기에 대비할 수 없다는 것. 이런 예기치 않는 일들은 세상 모든 일에 해당하니 그리 억울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 매일 좋은 날, 좋은 기분만 품고 살겠나. 우산 없이 비를 한껏 맞는 날도 있을 테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맑게 갠 하늘을 마주할 수도 있듯 갑작스러운 통증에도 곧 괜찮아질 거라 믿으며 불안을 덜어내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수밖에. 


다행히 오늘은 대체로 맑음이다. 



* 관해기 : 완화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기간 (출처 : 네이버 생명과학대사전)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

작가의 이전글 원고 청탁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