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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간호사 Jun 11. 2024

원고 청탁드립니다.

지나치지 않은 관심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투고조차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희귀난치성질환 환자의 일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담당자에게 답장을 남기고 부모님께 연락드렸다.  

"정말 잘 됐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병이라 이번에 글 쓰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겠다. 정말 잘했다."

"네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다. 하루 세끼만 먹을 수 있어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글까지 쓰게 되니 얼마나 다행이냐. 잘하고 있다."


발병 초기에는 부득이하게 병명을 알게 된 동료들과 친한 친구 외에는 주변 누구에게도 크론병 환자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편견이 두려웠고, 화장실을 자주 가는 모습이 흠으로 보일까 봐 꾸역꾸역 참았다. 아프지 않은 척 애쓰느라 힘들었다. 부모님은 타인의 입에 내 이야기가 오르는 걸 싫어했고, 나를 찾는 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미웠다.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한 번 사는 삶, 부모님께서 뭐라 하든 환자이며 간호사인 나를 존중하기로 결심하고 병을 숨기려 하는 모습에 거침없이 저항하는 뜻으로 모두 알 수 있게 공개적인 글을 썼다. 포장 없이 좋은 날, 슬픈 날 있는 그대로.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인정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방치와 외면으로는 어떤 일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숨길 것 없이 발병 당시 이야기부터 일상까지 다 꺼내놓으니, 주변에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는 부모님이 크론병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 간혹 독자들이 생소한 병명을 묻기도 하고, 증상이 어떤지도 궁금해한다. 이직을 여러 차례 해야 할 수밖에 없던 이유, 상처가 되는 말을 피하고 싶으니 알려달라는 것, 음식을 같이 먹는 데 불편함이 있을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모습까지. 사소한 궁금증 하나도 감사히 생각한다.


크론병은 20대와 30대 환자가 상당히 많다.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사회 초년생으로 지내야 하는 시간은 나의 과거와 같지 않았으면 한다. 툭하면 일하기 싫어서 화장실로 도망간다는 얘기를 듣는다거나 병을 알고서도 일부러 음주를 강요받는 일 등 황당하고 끔찍하니 그지없는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제발.


매일 글을 쓴다. 브런치스토리와 준비하고 있는 전자책, <병실로 퇴근합니다> 이후에 나오는 에세이, 일기 등 꾸준히 쓰고 있다.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을 다른 환자들, 특히 어린 환자들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쓴다. 지나치지 않은 관심으로 크론병을 누군가에게 전할 기회를 준 담당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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