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순간에 찾아온 마음의 온도
평소의 나는 보통 일드를 즐겨본다. 주로 보는 건 형사드라마 혹은 일상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한 건, 드라마에서는 희망을 느낄 수 없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위로를 받나? 그래, 가끔은 그렇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위로가 아니라 의미를 발견할 때가 있다.
며칠 전부터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를 다시 읽는 중이다. 어제는 <메이벌리를 떠나며>를 읽고 나서 깨달았다. 희망이란 건 어떤 시공간의 장면에 자신이 속해 있을 때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소설의 주인공 레이는 부인이 죽고 난 후에 직전에 우연히 마주친 리아(경찰의 신분으로 밤에 집까지 데려다준 인물)의 이름을 잊은 듯하다가 떠올린 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난 이 장면에서 희망이란 게 맥락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희망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레이와 리아 사이에는 그저 동네 주민이라는 연결고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메이벌리라는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으로도 레이에겐 충분히 희망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희망이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하게 소설 속 작품에서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나는 레이를 보고 그가 발견한 희망을 엿보다가, 문득 희망이 그런 의미라면 인생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질 수 있겠다는 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희망을 발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