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먼로] 밤

내가 보이지 않을 때

by 숨은결


이야기의 화자는 맹장 수술을 하면서 종양 제거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처음에는 맹장수술이 다른 아이들과 차별성을 더하는 어떤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평소 여동생을 짓궂게 놀렸다. 차츰 그 장난은 여동생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으로 변해갔다. 더군다나 밤에 잠들지 못하고 새벽까지 깨어 있곤 했다. 모두가 잠든 밤에 고요 속에 눈을 뜨고 있으면 잡생각에 휩쓸려 더 힘들었던 화자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밤마다 집 밖을 배회하다가 졸리면 침대로 가서 쓰러지듯 잠들었다.


본래 밤에는 낮에는 가라앉아서 보거나 들리지 않는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서 괴물처럼 달려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14세에게는 너무나 벅찬 시간이다. 요즘처럼 환한 빛이 24시간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부담스럽다고 해도, 고요가 납처럼 다가오는 밤은 누구나 버겁지 않을까.


이야기에서는 화자의 성별을 모호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야기 초반에는 소녀로 보였다가 후반으로 가면 소년인 듯 느껴졌다. 화자의 젠더를 확정해서 말하지 않는 건 작가의 의도로 보였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성별에 상관없는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게다가 화자가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낀 것은 단순히 맹장을 제거한 데에 있지 않다. 원인은 종양이었는데, 이 부분도 이야기는 몸의 어디에 생긴 종양인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14살의 화자에게 무척 중요하게 여겨질 법한, 그리고 젠더와 관련한 어떤 부위일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밤 외출을 막 하려던 찰나, 화자의 뒤에 기척이 느껴졌다. 바로 아버지였다. 평소 아버지와 그리 친밀하지 않았지만, 왜 밤에 나가야 했는지를 스스로 다 이야기해 버린 화자. 더 당황했던 것은 아버지가 아무런 꾸지람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것과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이었다. 희한하게도 그날부터 잠을 잘 수 있었다.


여동생에게 짓궂은 장난을 하거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은 연상선에 있다. 14살의 십 대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충동성과 공격성을 지닌 화자는 자신의 그런 변화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그것이 불면으로 이어진 것으로 읽혔다.


예상하지 못한 아버지의 반응은 의외였을 것이다. 허리띠로 자신을 때리기도 했던 아버지인데 밤에 왜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했을 때 자신을 이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낯섦 그 자체. 동시에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에서 오는 든든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안도감으로 이어져서 잠을 잘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 허약한 어머니를 둔 14살의 화자가 겪은 밤은 우리 중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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