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정성스러운 한 끼 있을까?
아보카도 6개 12,000원이라 적혀 있는 스티커 위에 덧붙은 30% 할인 상품 스티커. 습관처럼 장바구니에 담는다. 툭 던져진 아보카도는 초록 그물망보다 더 거무튀튀한 것이 딱 봐도 너무 익어 물컹거리게 생겼다. 이건 아니지. 세일 코너 매대에 다시 내려놓고 입구 쪽 진열대로 걸어 나가 싱싱한 아보카도를 집어 든다.
‘너한테도 좀 쓰고 살아’
친정엄마가 자주 하시는 말이 귓가에 울렸다. 대가 없이 남편과 자식을 위해 40여 년 살아오신 엄마가 중년에 접어든 딸에게 하는 당부의 말이다. 내가 밥상을 차려드릴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생신이나 기념일에 뭘 드시고 싶으시냐고 물으면 대답은 뻔했다.
‘먹고 싶은 거 없다. 아무거나 애들(손주)이 잘 먹는 거 사 와’ 내 마음대로 준비하려고 해도 엄마가 뭘 좋아하시는지 번뜩 떠오르지 않아 이런저런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엄마는 살면서 오로지 자신을 위한 정성스러운 끼니를 챙겨본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난 엄마의 방식을 부정하진 않지만 다르게 살기 위해 애써 노력하고 있다. 닭 요리를 먹을 때 맛있는 부위는 함께 나눠먹고, 제철을 앞선 비싼 과일일지라도 같이 맛보는 일, 엄마 생일 외식 메뉴는 엄마가 정하는 것과 같은 참 당연한 일이지만 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일들.
‘나는 잘 먹고살아요. 몸을 치장하는데 쓰지 않아도 나한테 쓰면서 잘 살고 있어요’
어쩌면 나에게 하는 다짐의 말을 대답으로 대신하고 한두 가지라도 내가 먹고 싶은 신선하고 예쁜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11시쯤 냉장고를 열어 주섬주섬 재료를 살핀다. 적당히 말캉하게 익은 아보카도를 반으로 갈라 칼로 탁 내리쳐 씨를 빼고 먹기 좋게 슬라이스. 냉동실에 쟁여둔 나만 좋아하는 치아바타에 물 스프레이 칙 뿌려 전자레인지 3분, 에어프라이어 180도에서 5분 동안 촉촉하고 바삭하게 굽기. 청계가 낳은 달걀은 반숙으로 삶아 소금과 후추 톡톡. 달걀을 제외한 나머지 재료에 올리브유 한 바퀴 조르륵 돌려주면 끝.
지지고 볶지 않아 가볍지만 결코 모자람 없는 정성스러운 나를 위한 한 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