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잔받침

다정한 받침이 되어 그저 곁에 머물러 주는 것

희미한 미래에 불안했던 때, 우연히 영화 <줄리&줄리아>를 보게 되었다. 소재는 다르지만 꿈을 찾고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나와 닮아 있었다. 주인공 줄리아는 뭐를 좋아하고 잘하는지 몰라 꿈을 찾는 일부터 녹록치 않았다. 그러다 자신이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프랑스 요리를 배우게 된다. 무려 8년에 걸쳐 정성껏 요리책을 써냈지만 출판 과정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한다. 하지만 특유의 에너지와 열정으로 도전을 이어간 끝에 출판에 성공하게 된다.

여름날 작업실 풍경

두 번째 주인공 줄리는 작가 지망생이었지만 꿈과는 전혀 다른 지루한 일을 하며 지친 일상을 보내던 중 남편의 권유로 요리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다. 50년 전 줄리아가 쓴 요리책에 524가지 레시피를 365일간 따라서 요리하고, 그 과정을 고스란히 블로그에 기록하는 혼자만의 프로젝트였다. 예상대로 처음은 봐주는 이가 없었다. 처음 달린 댓글조차도 줄리의 엄마라는 사실에 상심했지만 꾸준히 기록해 나가자 한두 명씩 반응을 보였고 이윽고 언론에 노출되어 결국 작가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무개로 모서리를 따라 일정하게 금을 긋는다

사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깎아 만든 부엌살림 100개’ 프로젝트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50년 전 줄리아의 행보가 줄리에게 이정표가 되어 주었던 것처럼 묵묵히 꾸준히 걸으며 얻게 되는 작은 성과들이 내가 걷는 낯선 길에 이정표가 되어줄 거라 믿고 싶었다.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블록대패로 모서리 각을 정리한다

참 중요한 주인공이 빠졌다. 두 여자의 행복한 결말은 그녀들의 끈기와 열정만으로 얻어진 게 아니다. 그 옆에서 큰 버팀목이 되어 준 남편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줄리아가 출판 문턱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때 남편 폴은 이런 말을 전한다. "누군 간 당신 책을 출판할 거고, 당신 책의 진가를 깨달을 거야" 자신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때 그녀들을 일으켜준 건 곁에서 지지해 주는 남편이었다.

미네랄 오일 마감

얼마 전 남편이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기를 "나무 만지는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흘러가듯 말했지만 힘 있는 한마디가 흔들리는 맘을 단단히 붙들어주었다. 지지해 주는 일은 일방적인 희생이나 특별한 배려가 아니다. 영화의 명대사 “줄리아, 당신은 내 빵의 버터고 내 삶의 숨결이야”처럼 근사한 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작업실에 파리가 많다며 파리채를 들고 와서 말벌까지 잡아주는 남편이 있어서 작은 숟가락 하나 멈추지 않고 더 깎을 수 있는 것처럼, 엎치락뒤치락 기대고 때론 기대어줄 수 있는 다정한 받침이 되어 그저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이다.